‘한국의 파브르’라고 불리는 정부희 박사가 버섯에 사는 딱정벌레를 촬영하고 있다. 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here@donga.com
다음 달 11일은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프랑스 곤충학자 장앙리 파브르의 사망 100주기다. 그가 남긴 10권의 곤충기는 생동감 있는 묘사에 시적인 표현까지 더해져 지금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떠났지만 지구 반대편에는 그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파브르’ 정부희 박사(고려대 한국곤충연구소 연구교수)와 곤충학술지를 펴낸 장영철 충우곤충박물관장이 주인공이다. ○ 한국의 파브르, 벌써 곤충기 5권
“프랑스에 파브르 곤충기가 있다면 한국에는 정부희 곤충기가 있어요.” 정 박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에는 ‘현장파’ 곤충학자의 자존심이 비친다. 그는 봄부터 가을까지 1주일에 2, 3일을 야외에서 보낸다. 곤충의 DNA를 연구하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때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서 살아있는 곤충을 찾아 나선다. 곤충 한 종이 알에서 애벌레를 거쳐 성충이 되는 모습을 수년 동안 관찰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7개 과(科)에 해당하는 곤충을 정리했다.
2010년부터 책으로 펴낸 곤충기만도 5권. 지금까지 곤충을 분류 기준에 따라 설명한 도감이나 특정 곤충의 생태를 소개한 책은 많았지만 우리 땅에 사는 곤충 전체를 이야기하는 책은 처음이다.
그의 곤충기는 논문과 수필을 오간다는 점에서 ‘파브르 곤충기’와 비슷하다. 곤충의 생태를 소개하다가 어릴 적 경험이 등장하고 다시 최신 연구 결과로 돌아오는 식이다. 재미도 빠지지 않아, 알락파리 암수가 입맞춤을 하는 장면에선 “기다란 주둥이를 꽈배기처럼 꼬고 두툼하고 넓적한 아랫입술을 느물거리며 밀착시킵니다”라며 영상을 방불케 했다. 곤충의 짝짓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탓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추천 글에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언저리를 아슬아슬하게 맴돌며 풀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정 박사는 지난해 7월 사비를 털어 경기 양평에 2975m²에 이르는 개인 야외 곤충연구소를 마련했다. 파브르가 말년을 보내던 개인곤충연구소와 빼닮았다. 그는 이곳에 곤충의 먹이식물 150종을 심어 찾아오는 곤충을 관찰하고 있다.
장영철 충우곤충박물관장(왼쪽)은 2015년 6월 국내 최초의 아마추어 곤충학술지 ‘계간 곤충’을 발행했다. 충우곤충박물관○ 아마추어 곤충학자들의 ‘사랑방’ 열다
파브르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마추어 곤충학자’에 해당한다. 대학이나 기관에 속하지 않고 중등학교의 물리 교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런 그가 이름을 남긴 이유는 자신의 연구를 철저히 글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곤충학자들이 책을 내긴 어려운 법. 장영철 충우곤충박물관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마추어 곤충학술지 ‘계간 곤충(昆(충,훼))’을 6월 26일 창간해 눈길을 끌었다.
장 관장은 “블로그 등에 신종 곤충을 올렸다가 전문가에게 업적을 뺏기는 아마추어 곤충학자를 위해 그들이 연구한 자료를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15년 전 일본에서 취미로 곤충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아마추어 곤충학술지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지식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고 꿈을 키웠다. 오랜 시간이 걸려 탄생한 ‘곤충’지는 학술지와 잡지의 중간 형태다. 곤충 분류와 생태에 관한 전문지식이 주를 이루면서도 개인적인 사연이 섞여 있어 여행기처럼 쉽게 읽힌다. 컬러 사진도 시원하게 담겨 있어 보는 즐거움도 있다. 창간호인 여름호에는 탄자니아 마레우 마을의 곤충상, 날도래목에 대한 소개 및 분류학적 연구 현황 등이 소개됐다. 10월 초 가을호 발행을 앞두고 있는 곤충지는 점점 늘어가는 국내 아마추어 곤충학자들의 사랑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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