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이 터치패드로 이뤄진 제어 시스템을 이용해 은제도금주자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고 있다. 리움 제공
12세기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은제도금주자(주전자).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품인 이 작품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고려시대 은제 주자로 연꽃 위에 봉황이 올려진 화려한 문양의 뚜껑이 핵심이다. 발견 당시 두껍게 녹이 슬어 청동제인 줄 알았는데, 보존처리 후 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져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이 작품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기획 전시 ‘금은보화: 한국 전통공예의 미’에서 만날 수 있다. 더욱이 이번 기획 전시에서는 첨단 정보기술(IT)이 은제도금주자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준다.
작품의 은은한 빛깔과 자태는 한 발 떨어져 있는 위치에서도 예술품으로서 ‘아우라’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작품 바로 옆에 있는 46인치 디지털 화면은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든다.
IT가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연꽃잎과 봉황 등 세세한 문양까지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 터치패드를 이용해 양손으로 확대·축소해 세밀한 부분까지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기술은 리움이 자체 개발해 특허까지 받은 ‘디지털 인터랙티브 관람시스템’이다.
46인치 디지털 화면을 가득 채운 은제도금주자의 윗부분 봉황과 연꽃잎들을 터치패드로 360도로 돌려가며 옛 장인의 섬세한 손끝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작품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는 느낌 그대로다.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5∼6세기 작품인 ‘가야금관’, 금가루를 물감 안료로 이용하면 붓으로 섬세하게 그린 고려시대 회화예술 대표작 ‘감지금은니대방광불화엄경’도 디지털 관람시스템을 이용해 조형 기법이나 작가들의 필체, 붓의 강약까지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김정회 리움 큐레이터는 “고미술품은 보존처리와 조명 한계 때문에 관람객이 작품을 자세하게 관람하기 어렵다”며 “눈으로 보기 어려운 작품의 디테일을 볼 수 있게 해주기 위해 고민한 결과가 이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리움의 기술로 구현한 작품 이미지는 풀 HD 해상도의 4배 수준. 작품당 72컷(5도 간격)을 회전시켜 촬영한 이미지를 합친 후 별도의 프로그램이 깔린 PC를 이용해 46인치 모니터에 무선통신(와이파이) 신호로 전송한다.
첨단 무선통신을 이용한 ‘리움 디지털 가이드’는 덤이다. 적외선 센서로 작동하는 갤럭시노트2 모델을 최적화한 단말기에 이어폰을 꽂고 작품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작품 설명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조도센서와 지자기센서, 자이로센서 등이 결합돼 작품이 촘촘히 전시된 곳에서도 정확하게 적외선 신호를 읽어내 데이터를 주고받기 때문에 작품설명이 섞이는 일이란 없다.
최인 리움 홍보 수석은 “가장 아날로그적 느낌을 주는 고미술품에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것”이라며 “기획과 디자인, 큐레이션에서도 과학기술이 결합돼 관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