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가해학생에겐 옥시토신이 치료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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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 폭력과 따돌림 문제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것에 죄의식을 갖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옥시토신’을 흡입한 원숭이가 동료에게 먹이를 양보하는 등 배려심이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가 실려 눈길을 끈다. 옥시토신은 모유 분비를 촉진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출산에 도움을 주고, 유대감과 친밀감을 강화하는 호르몬이다.

미국 듀크대 의대 스티브 챙 박사팀은 상대에 대한 공격성이 강한 벵골원숭이 두 마리를 서로 볼 수 있는 곳에 넣었다. 두 원숭이 입에 주스가 나오는 튜브를 꽂고 이 중 한 원숭이 앞에는 시선을 추적할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파란색과 녹색 모양이 나온다. 이 원숭이가 파란색을 보면 둘 다 주스를 마시지 못하지만 녹색을 보면 동료 원숭이만 마실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실험 후 선택권을 가진 원숭이의 코에 옥시토신을 주입한 뒤 다시 실험을 했다. 그러자 비록 자신은 주스를 마시지 못하지만 동료는 마실 수 있도록 한 녹색을 선택하는 확률이 기존의 37%보다 5%포인트가량 높게 나왔다. 옥시토신이 옆에 앉은 동료에 대한 배려심을 높인 것이다.

옥시토신이 남을 공감하고 배려하도록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옥시토신이 사람 간에도 친밀감과 신뢰감을 높여 협력하도록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0년 9월 의학 학술지인 ‘정신과학’에 따르면 성인 남성 27명에게 옥시토신을 투여한 다음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읽는 공감능력을 시험한 결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했던 참가자들도 공감능력이 향상됐다.

옥시토신은 수줍음 많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다. 2008년 폴 자크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신경경제학연구소장은 ‘수줍음 환자’ 수백 명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불안감 수치가 낮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렇다면 옥시토신을 ‘관계 개선 약’으로 쓸 수 있을까. 여러 동물 실험에서 옥시토신의 효과가 증명된 만큼 이 물질을 치료제로 활용할 가능성은 높다. 미국에서는 옥시토신이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높여준다며 스프레이 제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향수처럼 옷에 뿌리면 냄새를 맡은 상대방이 나를 활동적인 사람으로 느끼고, 내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용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아직 옥시토신을 치료제로 활용한 적은 없다”면서도 “지나치면 부작용이 있겠지만 사회적인 성격 형성과 관계 개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ym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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