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빙산 옮겨 아프리카 갈증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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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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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구진 ‘3D시뮬레이션’ 연구현장

《“미끄러우니 조심해요!”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에 빙산이 몹시 흔들렸다.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 파고가 10m를 넘는 파도가 빙산을 강하게 내리치자 모퉁이 얼음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앞에서 빙산을 끌던 배는 파도에 전복당하기 직전이다. 급히 배를 멈추고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남쪽!” 조이스틱 버튼을 눌렀다. 배에서 돛이 펼쳐졌다. 배와 얼음이 바람의 힘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임무 완수! 심호흡을 하면서 머리에 쓴 특수디스플레이 안경을 벗었다. 눈앞의 바다 영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극지의 빙산을 끌어다 적도 부근 물이 부족한 지역에 식수로 공급하는 연구가 프랑스에서 진행 중이다. 무게가 700만 t인 빙산한 덩어리를 녹이면 55만 명이 1년 동안 마실 물을 얻을 수 있다. 바람과 해류의 힘을 주로 이용해 운반하기 때문에 경제적이다.(해빙)빙산 무게-700만 t(55만 명이 1년간 마실수 있는 양).다쏘시스템 제공
극지의 빙산을 끌어다 적도 부근 물이 부족한 지역에 식수로 공급하는 연구가 프랑스에서 진행 중이다. 무게가 700만 t인 빙산한 덩어리를 녹이면 55만 명이 1년 동안 마실 물을 얻을 수 있다. 바람과 해류의 힘을 주로 이용해 운반하기 때문에 경제적이다.(해빙)빙산 무게-700만 t(55만 명이 1년간 마실수 있는 양).다쏘시스템 제공
예인선 두 척이 그물의 양끝을 잡고 빙하를 끌어당기고 있다. 예인선은 빙하의 이동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다쏘시스템 제공
예인선 두 척이 그물의 양끝을 잡고 빙하를 끌어당기고 있다. 예인선은 빙하의 이동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다쏘시스템 제공
○ 높이 200m 빙산, 파도 맷집 실험

실제 태풍 현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프랑스 소프트웨어 업체인 ‘다쏘시스템’의 ‘3차원(3D) 시뮬레이션센터’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에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극지의 빙산을 적도 부근까지 끌어오는 시뮬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허황돼 보일 수 있지만 해양학자, 빙하학자, 선박제조 전문가, 컴퓨터 공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자 20여 명이 모여 진지하게 빙산을 연구하는 현장을 10일(현지시간) 방문했다.

빙하를 녹인다고 하면 사람들은 북극곰 등 극지 생물이 서식하는 터전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런데 사실은 버려지는 것이 많다. 극지에 있는 육상 빙하에서는 수백만∼수천만 t 규모의 빙산이 해마다 1만 개 이상 떨어져 나간다. 이것들은 바다를 떠돌다 결국 녹는다.

연구팀은 700만 t 규모의 빙산 한 덩어리를 녹이면 55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약 200m인 700만 t 규모의 빙산을 만들고 북미 동쪽 그린란드 섬 해역부터 아프리카 서쪽 해역의 카나리아 제도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3D 시뮬레이션으로 제작했다. 이때 수온이나 파도, 조류나 암초 위치 등 위성정보를 활용해 실제 바다의 환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기자가 체험한 시뮬레이션은 북극의 봄철에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태풍 상황이었다. 연구팀에서 3D 시뮬레이션 구현을 담당하는 세드리크 시마르 연구원은 “태풍 외에도 수온을 높인다거나 계절을 변화시키는 식으로 다양하게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며 “빙산의 이동경로는 모든 환경적인 변수를 고려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 해류 이용… 오래 걸리지만 경제적

북극에서 봄철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태풍 상황에서 빙산을 운반하는 시뮬레이션을 기자(오른쪽)가 직접 체험했다.다쏘시스템 제공
북극에서 봄철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태풍 상황에서 빙산을 운반하는 시뮬레이션을 기자(오른쪽)가 직접 체험했다.다쏘시스템 제공

빙하를 직접 옮기는 것보다 생수를 만들어 가져오는 편이 더 경제적이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선박제조 전문가인 조르주 무쟁 씨는 빙하가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그는 “해류와 바람이 이동하는 방향을 분석하면 그 힘을 이용해 빙하를 운반할 수 있다”며 “빙산 한 덩어리를 옮기는 것은 5t짜리 물탱크 140만 개를 한꺼번에 운반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배는 빙산의 이동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계산한 빙산의 이동속도는 시속 1.8km 정도로 북극 바다에서 적도 부근까지 빙산을 운반하는 데 141일이나 걸린다.

이동시간이 길수록 빙산이 중도에 녹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날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빙산 전체 질량의 38%가 이동 과정 중에 녹았다. 노르웨이 극지연구소의 빙하학자 올라프 오르하임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특수 소재로 만든 차단막을 빙산에 씌울 것을 제안했다. 차단막은 빙산이 녹은 찬물과 주변 바닷물을 분리해 빙산이 차가운 물에 둘러싸여 이동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차단막은 파도 같은 외부 충격으로부터 빙산을 보호하는 부가적인 효과도 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봄 실제 빙하를 운반하는 데 도전할 계획이다.

무쟁 씨는 “빙산이 이동 중에 부서지는 등 특수 상황에 대비해 추가 시뮬레이션을 연구하고 있다”며 “안전성과 경제성을 높이면 빙산을 옮기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벨리지빌라쿠블레(프랑스)=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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