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겹 겹쳐 두드리면 ‘천하의 명검’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칼 두동강 내는 칼 어떻게 만들기에…

일본도 등 전통적 제작방식
기관총알 자를 정도로 강해
“현대 합금기술보다는 못해”
국내 전통 도검 전문가 홍석현 씨가 제작 중인 칼의 날을 살펴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내 전통 도검 전문가 홍석현 씨가 제작 중인 칼의 날을 살펴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슬 퍼런 칼날이 사방에서 춤을 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방에게 칼을 휘두르는 주인공. 쨍강, 반 토막 난 칼날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한국인 비(본명 정지훈)가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액션영화 ‘닌자 어쌔신’의 클라이맥스는 주인공이 자신의 스승이자 적의 우두머리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부분이다. 주인공의 칼은 적의 강력한 공격에 반 토막 난다. 얼마나 단단한 검이기에 다른 칼을 두 동강 낼까. 이런 명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 명검의 비결은 수천 번 접기

영화 속에서 적의 우두머리가 사용한 칼은 길이 1m 정도의 일본도. 2003년 일본 한 방송사의 실험 결과 일본도는 권총은 물론이고 초속 894m의 속도로 날아드는 기관총 탄환까지 두 동강 냈다. 일본도가 이렇게 강한 이유는 뭘까. 우선 철의 강도를 결정하는 탄소 함량을 한계까지 높였다. 철은 탄소 함량이 높을수록 강해지지만 깨지기도 쉽다. 그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인들에게 지급됐던 검은 탄소 함량이 2%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작 과정이다. 절삭도구 전문기업인 도루코의 양희성 연구원은 “칼은 형태를 만든 후 열처리와 연마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며 “같은 강철을 써도 열처리나 연마 방법에 따라 날의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고려도 등 옛 명검들은 ‘접철단조’라는 기술을 많이 썼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먼저 강도가 높은 강철과 연성이 높은 순철을 겹쳐 불에 달군다. 이것을 망치로 두들겨 편 후, 다시 접어 두들기는 것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완성된 칼은 수백 수천 겹 이상의 층 구조로 되어 있다.

철을 불에 달궈 급속히 식히는 ‘담금질’ 과정을 거치면 철 원자가 가장 단단하게 결합해 있는 ‘마텐자이트 구조’의 비율이 높아진다. 마텐자이트는 철 원자 사이에 탄소가 끼어 들어간 구조로 담금질을 계속할수록 칼은 점점 더 강해진다. 박성준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 연구원은 “무기용 칼을 만들려면 강하면서도 부러지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하는데 접철단조 기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일본도보다 강한 부엌칼 만들 수 있어

접철단조를 통해 만든 칼은 표면에 무늬가 나타난다. 일부러 무늬를 두드러져 보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두 종류의 쇠를 수십 겹 겹친 다마스쿠스 칼은 물결무늬가 독특해 고급 주방용, 수집용 칼로 팔린다. 일본도에서도 ‘하몽’이라는 물결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인이 만든 명검이 가장 강한 칼일까. 아니다. 현대기술을 적용하면 일본도보다 튼튼한 부엌칼을 만들 수도 있다. 합금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박 연구원은 “현대의 합금기술을 동원하면 순수한 철보다 수천 배 더 강한 쇠를 만들 수 있다”며 “전통 방식으로는 이런 합금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철에 크롬, 몰리브덴, 니켈, 바나듐, 티타늄 등을 넣으면 마텐자이트 상태가 많이 만들어져 철이 훨씬 강해진다. 또 철 원자들이 치밀하게 뭉치면서 강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만든 칼은 장인이 손으로 만드는 명검의 강도를 훨씬 능가할 수 있다. 양 연구원도 “세라믹 소재를 코팅하는 등 칼날을 강하게 연마하는 후처리 기술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진보했다”면서 “다만 주방용 칼을 너무 강하게 만들 필요가 없고, 가격도 매우 비싸져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라고 밝혔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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