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통 도검 전문가 홍석현 씨가 제작 중인 칼의 날을 살펴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슬 퍼런 칼날이 사방에서 춤을 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방에게 칼을 휘두르는 주인공. 쨍강, 반 토막 난 칼날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한국인 비(본명 정지훈)가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액션영화 ‘닌자 어쌔신’의 클라이맥스는 주인공이 자신의 스승이자 적의 우두머리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부분이다. 주인공의 칼은 적의 강력한 공격에 반 토막 난다. 얼마나 단단한 검이기에 다른 칼을 두 동강 낼까. 이런 명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 명검의 비결은 수천 번 접기
영화 속에서 적의 우두머리가 사용한 칼은 길이 1m 정도의 일본도. 2003년 일본 한 방송사의 실험 결과 일본도는 권총은 물론이고 초속 894m의 속도로 날아드는 기관총 탄환까지 두 동강 냈다. 일본도가 이렇게 강한 이유는 뭘까. 우선 철의 강도를 결정하는 탄소 함량을 한계까지 높였다. 철은 탄소 함량이 높을수록 강해지지만 깨지기도 쉽다. 그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인들에게 지급됐던 검은 탄소 함량이 2%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작 과정이다. 절삭도구 전문기업인 도루코의 양희성 연구원은 “칼은 형태를 만든 후 열처리와 연마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며 “같은 강철을 써도 열처리나 연마 방법에 따라 날의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고려도 등 옛 명검들은 ‘접철단조’라는 기술을 많이 썼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먼저 강도가 높은 강철과 연성이 높은 순철을 겹쳐 불에 달군다. 이것을 망치로 두들겨 편 후, 다시 접어 두들기는 것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완성된 칼은 수백 수천 겹 이상의 층 구조로 되어 있다.
철을 불에 달궈 급속히 식히는 ‘담금질’ 과정을 거치면 철 원자가 가장 단단하게 결합해 있는 ‘마텐자이트 구조’의 비율이 높아진다. 마텐자이트는 철 원자 사이에 탄소가 끼어 들어간 구조로 담금질을 계속할수록 칼은 점점 더 강해진다. 박성준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 연구원은 “무기용 칼을 만들려면 강하면서도 부러지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하는데 접철단조 기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일본도보다 강한 부엌칼 만들 수 있어
접철단조를 통해 만든 칼은 표면에 무늬가 나타난다. 일부러 무늬를 두드러져 보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두 종류의 쇠를 수십 겹 겹친 다마스쿠스 칼은 물결무늬가 독특해 고급 주방용, 수집용 칼로 팔린다. 일본도에서도 ‘하몽’이라는 물결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인이 만든 명검이 가장 강한 칼일까. 아니다. 현대기술을 적용하면 일본도보다 튼튼한 부엌칼을 만들 수도 있다. 합금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박 연구원은 “현대의 합금기술을 동원하면 순수한 철보다 수천 배 더 강한 쇠를 만들 수 있다”며 “전통 방식으로는 이런 합금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철에 크롬, 몰리브덴, 니켈, 바나듐, 티타늄 등을 넣으면 마텐자이트 상태가 많이 만들어져 철이 훨씬 강해진다. 또 철 원자들이 치밀하게 뭉치면서 강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만든 칼은 장인이 손으로 만드는 명검의 강도를 훨씬 능가할 수 있다. 양 연구원도 “세라믹 소재를 코팅하는 등 칼날을 강하게 연마하는 후처리 기술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진보했다”면서 “다만 주방용 칼을 너무 강하게 만들 필요가 없고, 가격도 매우 비싸져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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