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기관 세종시 이전-유치 과학계 “협의없이 진행” 비판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중이온가속기 지질조사 먼저… 사전공문 없어 이공계 홀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과학계 12개 단체는 25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서를 채택했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과학계 12개 단체는 25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서를 채택했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세종시로 일부 이공계 연구기관의 이전이 검토되고 있지만 정작 해당 기관에서는 공식적인 논의조차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의사소통에 볼멘소리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성급한 세종시 유치가 수천억 원의 예산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며 우려했다.

총리실이 23일 세종시 대책을 발표하며 유치나 이전을 거론한 기관들은 하나같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종시 유치가 거론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아태이론물리센터) 김승환 사무총장은 “사전에 공문 한 장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이전 계획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태이론물리센터는 1996년 설립된 뒤 2001년 경북 포항으로 자리를 옮겨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분원을 설치한다고 알려진 고등과학원도 당혹스럽다. 김재완 부원장은 “양자역학실험센터 설립 계획이 고등과학원 분원으로 확대 해석됐다”며 “양자역학실험센터도 새로운 계획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세종시에 제2캠퍼스 유치를 검토하겠다고 한 국가핵융합연구소의 이경수 소장도 “연구소가 제2캠퍼스 용지로 제안한 곳은 세종시가 아니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고 밝혔다.

세종시 논란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데 대한 과학계의 불만은 25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이 주최한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세종시’ 토론회에서도 드러났다. 이영백 한국물리학회장은 이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를 놓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는 얘기가 나온다는 사실에 끌려다니는 것만 같아 자괴감마저 든다”면서 “이공계 홀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과학계의 볼멘소리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과학계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연구기관 이전은 계획일 뿐 확정된 내용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세종시 유치가 유력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경우 민감한 시설인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서는 만큼 지질학적 타당성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이온가속기는 빠른 속도로 중이온을 가속시켜 원자핵에 충돌시키는 만큼 지진 위험이 없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가속기 전문가인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의 이용영 박사는 “100년 동안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 가속기를 지어야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세종시가 위치한 충남 일대는 지난 30년간 한반도의 지진 다발지역으로 꼽힌다.

가속기 전문가인 국내 대학의 한 교수는 “중이온가속기를 지상과 지하 중 어디에 설치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입지부터 선정했다가는 수천억 원의 예산을 낭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에서도 가속기 깊이를 변경했다가 예산이 절반이나 늘었다. 이에 대해 교과부 편경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지원단장은 “세종시가 도시개발용으로는 지질 조사가 돼 있지만 가속기에 적합한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1년간 가속기 개념 설계를 진행하면서 함께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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