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어느 날. 전기차 충전소에 잘 빠진 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급속 충전기를 차량 옆 단자에 연결한 뒤 운전석으로 돌아와 TV를 켰다. 충전지(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30분 정도 걸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보기만 해도 황당한 이 상황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실제 미래 운전자가 겪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달 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전기차의 상용화를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을 논의하는 ‘전기자동차 기술개발과 산업화’ 심포지엄이 열렸다. 전문가들은 “충전 시간과 충전 방식, 인프라의 확충 등 전기차 배터리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야 상용화에 성공한다”고 입을 모았다.》 ‘10분 충전’ 가능하지만 감전-폭발 위험도 커져 고속 주행땐 전기 소비량 쑥 배터리 추가는 車무게 부담 ○ 전기차 속도 빠르면 멀리 못 간다
전기차를 움직이는 엔진인 ‘모터’ 기술은 현재 거의 완벽한 수준에 도달했다. 속도나 힘, 안정성 측면에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모터는 1분에 1만2500번 회전하며 최고 시속 180∼200km 수준에 이르렀다. 속도 면에서 휘발유 엔진과 맞먹는다. 다만 속도가 올라가면 전기를 급격히 많이 소비하는 단점은 남아 있다. 동아대 전기공학과 정상용 교수는 “모터 회전속도는 배터리의 출력과 직결된다”며 “시속 70km로 200km를 달리는 전기차도 시속 200km로 달리면 70km도 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고속 주행을 위해 배터리 수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전기차 무게의 대부분은 배터리가 차지하고 있어 배터리가 커지면 차량 무게가 무거워지고 주행거리도 줄어든다. 배터리 용량이 커지면 충전하는 데도 오래 걸린다.
현재도 일본 닛산의 리프(leaf)는 충전하는 데 8시간, 일본 미쓰비시 아이미브(i-MiEV)는 7시간, 현대자동차의 ‘i10’은 5시간이 걸린다. 독일 BMW의 ‘미니E’는 35kWh 배터리 충전에 2시간 반이 걸린다. 정 교수는 “가정용 전력의 출력을 높이면 충전 시간은 줄어들지만 감전사고 위험이 있어 출력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급속 충전 기술이다. 현재 주요 전기차량은 30분 내에 배터리 용량의 80%를 충전할 수 있다. 이론상 나머지 20%도 10분 안에 충전이 가능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배터리의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배터리 전압이 0V일 때는 충전 전압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전기가 빨리 채워진다. 하지만 전압이 점점 올라가면서 충전 전압과 차이가 줄어들면 충전 속도가 느려진다. 한국전기연구원 전지연구센터 도칠훈 책임연구원은 “배터리가 전하로 가득 찰수록 전하가 들어오는 관이 좁아지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 최소 30분 기다리는 끈기 필요
급속 충전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일단 충전 과정에서 리튬 배터리에 전기가 들어오면 양전하인 리튬이온이 전자와 결합하면서 음극으로 몰린다. 충전율이 올라가면 리튬은 음극에 많이 몰리게 되고 저항이 커지면서 열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한 열은 배터리에 들어간 전기에너지가 바뀐 것이다. 열은 전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전류를 대량 공급하는 급속 충전의 경우 에너지 손실은 더 커진다. 전기연 임근희 전기추진연구센터장은 “열이 발생하면 충전 시간이 길어지고 배터리 폭발 위험도 급격히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기연 전기추진연구센터 류홍제 책임연구원은 “지금 기술로도 충전시간을 10분으로 단축하는 데 문제는 없다”며 “하지만 안전 문제로 일부러 30분으로 늘려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운전자들은 집과 회사 등 장시간 주차할 때 미리미리 충전하고, 장거리를 달리다 전기가 떨어졌을 때 급속 충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급속 충전 시간마저 기다리지 못하는 운전자를 위해 배터리를 교환해 주는 서비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높다. 일정 금액을 주고 배터리를 임차해 쓰다 급속 충전이 필요한 경우 교환소에서 충전된 배터리로 바꿔 쓰는 방식이다. 배터리 교체 시간은 3분이다. 민간 친환경자동차 연구기관인 넥스텔리전스 최상열 신사업연구소장은 “전기차 상용화의 성패는 배터리 기술에 달려 있다”며 “전기차는 자동차 제조회사뿐 아니라 배터리, 전력 산업의 재편을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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