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윈도우 프로젝트의 허실

  • 입력 2009년 7월 12일 19시 01분


티맥스소프트 박대연 회장
티맥스소프트 박대연 회장
티맥스 OS 발표현장.
티맥스 OS 발표현장.
3-4년 연구 만에 OS 가능? vs "사기 진작용" 3개월 이후 판단

"지금까지 한 국가가 하나의 산업을 30년 이상 독점한 역사가 없습니다. 소프트웨어(SW) 산업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7월7일 시연회장에서 티맥스소프트 박대연 회장)

박 회장이 언급한 독점의 주역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제 '윈도'를 가리킨다. 1980년대 도스(DOS)시절을 포함해 독점에 가까운 지배력이 3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픈소스 진영의 리눅스, 애플의 맥OS 등 경쟁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MS윈도 점유율은 무려 98%에 달한다.

이에 도전장을 낸 업체가 외국 유수의 회사도 아닌 한국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쉽게 믿을 수 있을까?

누구나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감행한 업체는 대표적 중견업체인 티맥스소프트(대표 문진일)다. 이 회사는 지난 7일 '티맥스-데이 2009'행사를 열고 자사의 새로운 PC용 운영체제인 '티맥스 윈도(Tmax window9)과 오피스(Tmax Office) 웹 브라우저인 '티맥스 스카우터(Tmax Scoutor)'를 공개했다.

● 토종 OS의 힘찬 도전

티맥스는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위대한 도전'에 국내 최고 수준의 개발인력 수백 명과 연구개발(R&D)비 수백억 원을 투입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회사 창립 이후 줄곧 CTO(최고기술책임자) 자리를 지켜온 박 회장의 인재 욕심은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투자라고는 하나 MS 구글 오라클 등 수백억 달러의 매출 규모와 수만 명의 개발 직원을 갖고 있는 글로벌 업체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중소기업에 불과한 규모(직원 2000여명, 지난해 매출 약 1000억원)를 믿고 무모한 꿈을 품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수차례 약속된 출시일을 어겨가며 찾아온 운명의 7월7일. 업계 안팎의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티맥스 윈도' 공개행사에는 2000여명의 관객들이 찾았고, 이와 동시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시연회 장면은 무려 10만 명이 넘는 접속수를 기록했다는 것이 티맥스 측의 주장이다. 현장에는 주요 SW업계 관계자는 물론 정관계 주요 인사들까지 찾아와 토종 OS에 대한 열기를 입증했다.

박 회장이 "10월까지는 모든 테스트를 끝마치고 11월에 시제품을 내놓겠다"며 "앞으로 2015년까지 세계 PC운영체제의 30%를 점유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자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1993년 K-도스라는 한국형 도스 개발 이후 첫 한국형 OS개발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서는 이를 지지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시연회를 전후해 IT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언제 우리가 토종 OS를 만들어보리라 생각했겠냐"며 "이 같은 무모한 시도는 결과야 어떻든 자꾸 있어야 한다"는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현재는 이 같은 응원의 소리는 쑥 들어간 상태다. 오히려 티맥스 윈도에 대해 실망감을 넘어 '냉소'까지 보내는 의견들이 속출하고 있다. 누리꾼들이 PC용 윈도의 최종 소비자이자 IT업계의 트렌드에 관심 있는 준 전문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누리꾼들의 냉담한 반응은 티맥스의 미래를 어둡게 하기에 충분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IT업계 전문가들이 티맥스에 쏟아낸 의혹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모두가 고개만 갸우뚱, 꿀 먹은 벙어리

① 알파, 베타버전도 없이 시제품 출시?

지난 7일 시연회를 가지며 박 회장은 "실체 없는 또 하나의 황우석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서둘러 발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시연회는 이 같은 의혹을 불식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 누리꾼들의 평가다. 우선 기존 SW 시연회의 기본 과정인 '설치-부팅-각종 어플리케이션 실행-종료'라는 전 과정을 매끄럽게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MS윈도와 완벽하게 호환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MS호환의 최신 기준인 '실버라이트나 다이렉트X' 등은 시연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아직은 불완전 하다는 얘기다.

시연회 전반에 걸쳐 소비자들과 무관한 OS개발의 어려움과 중요성만을 강조했을 뿐 중요 대목은 스크린샷(이미지)나 프로그램 동영상 리플레이로 대체한 것도 실망을 더했다. 때문에 행사가 끝난 직후 참석자들은 "어떻게 베타버전은 커녕 알파버전도 없이 3개월 뒤에 시제품이 나올 수 있냐"라고 반문한다.(*상용화 직전 단계가 베타버전, 실험단계는 알파버전)

② 짧은 시간 안에 윈도뿐만 아니라 오피스에 웹브라우저까지?

티맥스 윈도는 시장 지배자인 MS윈도와의 호환을 목표로 개발됐다. 그러나 목표 자체가 지나치게 허황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티맥스가 주장했던 "100% 윈도 및 유닉스 호환, 게다가 100% 순수 기술"이란 얘기는 공상과학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OS를 비롯한 각종 첨단 SW를, 그것도 단지 수백 명의 개발인력으로 독자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SW개발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유명 IT 관계자는 "OS조차 제대로 시연을 못했는데, 거기에 워드와 엑셀, 심지어 익스플로러까지 자체 개발을 주장하는 것은 솔직히 코미디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③ 어디가 100% 토종기술? 오픈소스 유용한 것 의혹

티맥스에 곱지 않은 시선이 향하는 배경엔 티맥스 측이 이 프로젝트를 철저하게 100% 토종기술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KAIST의 한 박사급 연구원은 "티맥스의 기술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SW 개발 수준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정부의 지원과 투자를 의식한 발표였다"고 지적한다. 실제 티맥스는 그간 정부주도 SI(시스템통합)사업에서 '토종기술'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 받아왔다.

이미 SW시장에는 '오픈소스'라는 무료로 공개된 거대한 'SW소스 은행'이 존재한다. 심지어 오픈소스를 활용한 OS개발이 적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시제품조차 없는 상태에서 '100% 호환 및 독자 기술'을 강조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한 개발자는 "SW는 개발보다 안정화 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거 MS윈도에도 '블루스크린'란 오명이 함께했다. 윈도의 '파란화면'이란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로 다운이 될 때 생기는 현상인데 이 같은 오류를 최소화 시키고 64bit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무려 10년 가까운 시간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 완벽한 호환은 SW의 꿈, 쉽게 가능할까?

각종 OS를 완벽하게 호환한다는 것은 이른바 'SW업계의 꿈'이다. 그런데 티맥스는 단숨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한 개발자는 티맥스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100m 선수가 세계기록인 9.6초를 목표로 삼는 것은 현실적이지만 티맥스는 마치 7.5초 기록을 달성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티맥스 측은 "우리는 아내에게 이혼당할 위기에 까지 몰리며 지난 4년간 '밤낮' 구분 없이 '주말'을 모르고 일에 몰두해 왔다"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재품을 출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티맥스는 시제품이 출시되는 10월 이후 자신들에게 제기된 모든 의혹을 '제품'으로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티맥스의 진전성에 대한 판가름은 3개월 뒤로 미뤄진 셈이다.

▼ 티맥스 박대연 회장은 누구? ▼

1955년생인 그는 집안이 어려워 야간 중고등학교를 나와 은행에 입사했다. 은행 전산실에서 일하다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붙여 32살이란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8년 만에 USC(남가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그는 40이 넘은 나이에 KAIST 교수를 지냈다. 1997년 기술 장벽이 가장 높다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 벤처기업인 티맥스를 설립하고 단 시간 내에 우리나라 간판 SW업체로 키워냈다. 특히 일반 소비자보다는 기업을 상대로 하는 미들웨어나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으로 명성을 쌓았다. 티맥스의 국내 미들웨어 시장점유율은 35%에 이를 정도이다. 휴대전화 운영체제 시장에 진입한데 이어 이제는 운영체제 시장의 최대 시장인 PC운영체제 정복을 선언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