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박사가 한국 첫 병리학자인 거 아세요?”

김한겸 고려대학교 병리학과 교수

송재 서재필 박사. 동아일보 자료사진

알고보면 영화·드라마·역사 속 주인공으로 병리의사 수두룩

병리학을 연구하다보니 한국의 미라가 역시 연구 대상이 된다. 보기드문 공부(?)이다보니 기자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는데, 명함을 건네면 꼭 이런 반응과 질문이 돌어온다.

“와! 검도가 7단이나 되시네요. 그런데 전공이 병리학으로 되어있는데, 병리학이 뭐하는 학문이죠?”

요즘은 대답이 정해져 있다.

“CSI 랍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충 이해하는 눈치이다. 내가 하는 질문도 정해져있다.

“CSI드라마에서 병리의사가 누군지 아세요?”

여기까지 오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긁적이거나 얼굴이 빨개지곤 한다.

실제로 CSI드라마에서 병리의사는 흰 수염의 앨버트 로빈스 박사이다. 그는 병리전문의로서 검시관(Medical Examiner, ME)으로 근무하면서 부검을 통해 사인(死因)을 밝히는 동시에 범죄와 관련된 현상을 찾아내는 전문가이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병리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극중 의사로 등장하는 오경환이 바로 병리학 교수인데 깡마른 체형과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로서 깐깐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수입도 안 좋고, 대우도 좋지 않은 기초의학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느 정도 병리의사들의 외모와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뿐 아니라 많은 유명한 소설에서 병리의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러시아의 문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인 ‘의사 지바고’의 주인공 지바고는 병리학자로서 의사의 길을 시작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로빈 쿡이 쓴 많은 의학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공도 병리의사이다. 최근작인 ‘위기’(2007년작)나 ‘마커’( 2005)에서도 주인공은 부검을 통하여 사인을 밝히고, 범인을 찾아가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리의사들은 기초의학자로서 질병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를 할 뿐 아니라, 부검을 통한 사인규명, 현미경 검사를 통한 암 진단 및 첨단 진단기법을 이용한 각종 질환의 확진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유전자검사를 이용한 질병의 진단기법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또한 바이오뱅크를 운영하면서 생명윤리의 존엄성을 과학자와 국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로 병리학은 근거중심주의의 기초에서 발달한 서양의학의 근간이며, 진단과 사인규명을 통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896년 4월 7일 서재필 박사는 독립신문 창간사에서 국민을 위한 대변자로서의 역할, 정부와 백성을 연결하는 역할, 부정부패 탐관오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할 것을 천명했다.

독립신문은 19세기 말 한국사회의 발전과 계몽에 지대한 역할을 한 기념비적인 신문이었다. 그런데 서재필 박사가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을 배운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한국 최초의 병리의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자 역시 독립기념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서재필 박사의 수많은 유품들을 조사하던 중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아마도 병리의사로서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2008년 10월 27일 동아사이언스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를 창간했다. 과학에 대한 모든 것을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한국사회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독립신문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더사이언스에 병리학과 관련된 정기 연재코너를 마련하여 유익한 병리학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대한병리학회는 병리 전문가들을 필진으로 구성해 의학과 과학의 근간인 병리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더사이언스와 병리학회의 앞날에 축복이 함께하길 바란다.

김한겸 대한병리학회 이사장

※글쓴이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 의과대 병리학 교수와 학생처장을 맡고 있다. 대한병리학회 이사장, 인체유래검체 거점은행장 등을 맡아 학술활동에 매진 중이다. 국제생물자원환경학회(ISBER) 대표위원이기도 하다. 검도 7단의 고단자로 서울특별시검도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동아사이언스가 만드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The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