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선 익명게시판을 ‘여론 쓰레기장’ 취급

  • 입력 2008년 6월 14일 03시 01분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해외 누리꾼들의 ‘댓글문화’

아사히 등 유력신문에는 댓글공간 아예 없어

佛은 안티사이트에서도 욕설-인격모독 금지

美서 언어폭력 누리꾼들은 무시당하기 일쑤

“인터넷 뉴스에 댓글이 많고 표현이 거칠어 놀랐어요.”

1960년대 파독 간호사의 아들로 한국 인터넷 사이트를 즐겨 방문하는 독일인 K(33) 씨는 한국 누리꾼들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가장 먼저 이렇게 답했다.

욕설과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 한국 누리꾼 특유의 ‘공격적인’ 인터넷 소통 형태는 특히 첨예한 정치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극한적인 형태로 치닫기 일쑤다. 미국 유럽 등의 경우에도 여러 인터넷 뉴스와 동호회 등이 ‘댓글’ 기능을 제공하지만 한국 같은 인신 비하적 표현이나 집단따돌림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요 국가들의 ‘댓글 문화’를 살펴본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댓글 기능 없어=인터넷 사이트를 갖고 있는 미국 언론매체들은 댓글을 달거나 게재된 댓글을 보는 절차가 한국과 크게 다르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댓글이 저절로 뜨지 않으며, 특정 이슈나 기사와 관련해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고 싶은 사람이 한 차례 클릭을 할 경우에만 댓글을 보거나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했다.

뉴욕타임스는 제한적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서만 ‘코멘트’ 형식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미국 인터넷 문화에서 특히 자신과 의견이 다를 경우에도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이념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빨갱이’ ‘수구보수’ 등으로 매도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일부 이 같은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누리꾼이 나타날 경우에도 주목받기보다는 무시되기 일쑤다.

▽프랑스, 욕설 땐 삭제조치=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전직 리베라시옹 기자들이 만든 ‘www.rue89.com’이라는 사이트가 ‘시민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13일 현재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기사는 정치인 비리 의혹 사건 ‘클리어스트림’과 관련한 것으로 조회수 약 2만5000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댓글 120여 건이 올랐다.

그러나 어느 댓글에도 한국의 일부 사이트처럼 욕설이나 인격 모독성 글은 없다.

포럼 사이트 ‘sarkostique.xooit.fr’는 ‘순도 100% 안티 사르코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대한 중상이나 인격 모독의 표현, 욕설을 사용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운영자가 개입해 표현을 순화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사이트는 일각에서 ‘자체 검열’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이런 방침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

▽일본 댓글 피해자들 소송 잇따라=일본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비방과 중상, 폭언 등으로 어린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등 ‘댓글 문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후쿠오카(福岡) 현 기타큐슈(北九州) 시의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여고생이 “블로그에 ‘죽어라’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0월 오카야마(岡山) 현 오카야마 시에서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열차에 뛰어들어 숨졌다.

이 학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의 대표적 익명 게시판 사이트인 ‘투 채널’에서 “기분 나쁘니까, 아웃(Out)” “진절머리 나니까 빨리 사라져 주면 좋을 텐데” 등의 댓글 공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댓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오사카(大阪)지법은 지난달 23일 한 여중생이 댓글 폭언을 방치한 웹 사이트 관리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신적 고통에 대해 55만 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이 같은 댓글 게시판이 여론 형성에 영향을 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 주류 문화가 아니라 ‘하위 문화’의 산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중상 비방이나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투 채널을 ‘여론의 쓰레기처리장’ 정도로 여기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 아사히신문 등 유력 신문의 홈페이지 기사에는 댓글을 다는 공간 자체가 없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中의 ‘떼글’

‘인육수색’ 표적 되면 수십만이 떼지어 비방

실명없이 사이트 등록… 무고한 피해자 양산

최근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 정부의 홈페이지에는 한 대학교 부총장이 쓰촨(四川) 성 대지진 피해자 돕기 성금 내기를 거부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이 부총장을 비판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욕설을 포함한 수준 낮은 글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얼마 뒤 이 부총장이 개인적으로 1200위안(약 18만 원)을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했으며 단지 총장의 ‘자기과시용’ 모금에 협조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를 매도하는 댓글은 그치지 않았다.

미국 유럽 등과 달리 중국에서는 무책임하게 타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누리꾼이 2억2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늘어났지만 인터넷이나 댓글 문화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중국의 인터넷 문화도 이 같은 현실에 한몫한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가 실명 확인 없이 ID와 패스워드만 넣으면 등록되다 보니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남을 비방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영토 분쟁이나 티베트 사태 등 민족주의나 애국심을 자극하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면 하루 만에 수십만 명이 달려든다. 미국 국무부가 연례적으로 중국의 인권보고서를 낼 때는 “너희나 잘하라”는 욕설이 댓글에 난무한다.

이러다 보니 정부나 관영 언론매체가 누리꾼들에게 ‘애국심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표출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광경이 빚어지기도 한다.

특히 중국의 빗나간 누리꾼 문화의 대표적 사례로는 ‘인육수색(人肉搜索·인물검색)’이 꼽힌다. 누리꾼 한 명이 ‘매국노’ 등의 명목으로 ‘표적’을 공개수배하면 다른 누리꾼들이 달려들어 표적의 잡다한 정보를 캐내 공개하고 그를 비판하는 것이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을 연상시키는 이런 ‘인육수색’은 바이두(百度) 신랑(新浪) 등 각종 포털의 토론방이나 타오바오(淘寶) 톈야(天涯) 이취(易趣) 등 토론사이트에서 난무하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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