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자가 진단’ 사람 잡는다

  • 입력 2008년 6월 13일 20시 16분


회사원 양모(29·서울 동작구 대방동) 씨는 최근 입술 주위에 물집이 났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헤르페스(염증성 피부질환)' 증상과 똑같았다. 헤르페스라고 확신한 양 씨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세균이 감염되기 쉬우니 공중화장실은 가지 말라'는 글을 보고 공중화장실은 멀리 했다. 며칠 후 의심쩍어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피곤해서 입술을 터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내 병은 내가 진단한다?=인터넷에 각종 건강의학 정보가 넘쳐나면서 이런 부정확한 정보에 의존해 자신의 병을 직접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사이버콘드리아'(cyberchondria)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이버콘드리아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일단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면 이런 증세와 연관된 특정 질환에 걸렸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해 자신이 그 병에 걸렸다고 확신한 후 치료방법을 인터넷에서 찾는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질의응답 관련 게시판에는 "OO병에 걸린 것 같은데 맞나요"라는 질문이 수없이 많이 올라와 있고 질문 밑에는 각종 진단과 치료 방법을 알려주는 댓글이 달려 있다.

한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을 분석해보니 '아토피에 걸린 것 같다' '탈모 치료법을 알려 달라' '고교생인데 폐암인 것 같다'는 질문에 '아토피 치료용 연고는 스테로이드가 들어있어 안 좋다' '탈모는 남성호르몬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니 여성호르몬 약을 먹어보라'는 댓글이 달려있다.

▽의사 진단도 믿지 않아=전문가들은 전문적인 의학정보 판단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정보를 과신할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원 이성훈(35·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씨는 최근 못에 긁혔는데 파상풍이 걱정돼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는 "치료방법을 검색해보니 '망치로 찔린 부분을 때려 세포가 죽어서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면서 "그 정보를 그대로 따라했다가 병이 더 악화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이버콘드리아 증세가 심할 경우 병원을 방문해 본인이 생각한 진단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전문의가 다른 처방을 내릴 경우 이를 믿지 않고 다른 병원을 찾는다.

건양대의대 김안과병원에 따르면 최근 눈이 처치는 안검하수 증상을 가진 30대 여성에게 특정 수술법을 권하자 그 여성은 다른 수술법을 대며 "인터넷에는 이 수술이 더 좋다고 나와 있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그 여성은 화를 내며 다른 병원으로 가버렸다는 것.

지훈상(연세대 의료원장) 대한병원협회 회장은 "이미 자신의 질환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쫙 뽑아보고 자가진단을 내린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다"면서 "이런 환자들은 의사의 진단을 믿지 않아 설득하기 힘들고 제때 치료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콘드리아 문제가 심각해지자 의료계도 대책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네이버와 의료상담 콘텐츠 제휴 협약을 맺고 건강의학 정보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김주경 의협 대변인은 "인터넷의 의학정보가 내용상 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맞는 치료법이 다르므로 인터넷 정보는 '1차 정보' 정도로 참고하고 의사와 상의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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