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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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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김태희와 바꿔 주세요.”
최근 한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우먼 출신 방송인 송은이 씨가 ‘페이스오프’에 관한 설명을 듣던 중 한 말이다. 페이스오프가 실제 가능하다는 성형외과 전문의의 이야기에 송 씨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페이스오프(Face-off). ‘대결’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는 이 단어는 두 남자가 첨단 수술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뒤바꾼다는 내용을 담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 ‘페이스오프(Face/Off)’가 히트를 치면서 ‘얼굴을 벗기다’ 혹은 ‘얼굴을 바꾸다’란 의미로 더 잘 통한다. 성형외과 업계에서는 ‘원래 모습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눈을 떠보니 내 얼굴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뀌어 있다면?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아직까지 의학은 두 사람의 얼굴을 서로 완벽하게 ‘교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방법을 통해 그런 수준에 점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 ‘외모 교환’ 아닌 ‘조직 이식’
최초의 페이스오프는 2005년 11월 프랑스 도시 리옹의 에두아르 에리보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개에게 물려 코와 입, 턱이 뜯겨나간 여성이 뇌사자의 조직을 이식받아 얼굴을 복원하는 수술을 받은 것. 기증자의 얼굴에서 피부, 지방, 혈관은 물론 이와 연결된 근육과 말초 신경조직까지 떼어내 이식자의 얼굴 위에 옮겨 놓은 뒤 미세혈관을 연결했다. 미세한 봉합실로 이식 조직들을 꿰맸다.
이는 비록 부분적인 페이스오프였지만 의료계에선 의미가 매우 큰 사건으로 평가한다. 장기이식과 달리 안면이식은 면역거부반응이 심해 위험한 수술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환자가 흔하지는 않기에 수술 노하우 축적도 쉽지 않다. 게다가 자신의 다른 신체 부위나 보형물을 이용해 훼손된 얼굴을 복원하는 방법이 있으므로 타인의 얼굴을 이식할 필요성은 그만큼 낮다.
○ 얼굴을 바꾸다
성형 분야에서 페이스오프는 다른 사람과 얼굴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원래 모습에서 눈, 코, 얼굴형을 조금씩 바꾸어 전체적인 느낌을 확 바꾸는 ‘이미지 변신’을 의미하는 단어로 통용된다. 컴백을 하는 연예인들이 간혹 ‘같은 듯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것처럼, 분명 동일인의 얼굴이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와 인상을 주는 얼굴로 바꾼다는 개념이다.
압구정서울성형외과 이민구 원장은 “눈, 코의 모양만 바뀌어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면서 “두 군데 이상 부위를 한꺼번에 수술하는 ‘콤비네이션 성형’이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억을 지우고 싶을 때…
페이스오프 성형을 원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이혼 같은 정신적 상처를 겪은 뒤 자신의 과거 모습을 지우고 새롭게 출발하기를 원하는 여성들 중 페이스오프 성형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또 미국 등 서양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던 학생들이 성인이 된 뒤 성형을 하기 위해 귀국하는 사례도 있다. 대부분 서구적인 이미지로 얼굴을 바꿈으로써 외모로 겪은 차별을 극복하려는 마음에서다. 이 경우 눈은 깊어 보이면서 크게 변화시키고 코는 일반적인 코 높이보다 더 높게 보이려 한다. 눈과 코를 함께 성형해 이국적인 인상으로 바꾸려는 것. 실제로 이 수술을 받은 유학생 Y(25) 씨는 “한국에서 수술을 받은 뒤 미국으로 돌아갈 때 여권의 사진과 변한 내 얼굴이 너무 달라 여권 재발급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 이마에서 발가락까지 전신성형
얼굴뿐 아니라 온몸을 성형하는 ‘전신성형’도 생겨났다. 이마부터 발가락까지 모든 신체 부위에 대한 성형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 몸의 부피를 줄이거나 반대로 부풀리는 지방흡입이나 지방이식, 가슴 성형, 엉덩이 성형, 종아리 성형, 쇄골뼈 성형, 귀 성형, 남성들의 복근 성형…. 페이스오프에서 더 나아간 이른바 ‘보디오프(body-off)’인 셈이다.
한 부위를 과도하게 수술하는 경우가 아니면 여러 가지 수술을 동시에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수술이 장시간 이뤄지므로 마취의 안전성과 수술 전 건강 상태를 세심하게 체크해 보아야 한다. 신체 부위별로 성형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페이스오프 가능? 불가능?▼
1997년 개봉된 영화 ‘페이스오프’는 경찰이 의식불명의 범죄자와 얼굴을 바꾼 뒤 조직에 잠입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얼굴을 완전히 바꾼다는 설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답은 ‘불가능하다’이다.
영화 속 페이스오프는 뼈를 제외한 얼굴 조직 전체를 그대로 떼서 옮겨 앉히는 방법. 얼굴 조직은 피하지방과 멜라닌 세포 등 각종 세포들이 특히 예민해 거부반응이 심하다. 페이스오프를 하더라도 면역체계가 맞지 않으면 피부가 괴사해 버릴 수도 있다. 그만큼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
얼굴 조직을 떼어다가 옮겨 붙인다고 해도 뼈의 골격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완벽한 페이스오프는 이뤄지지 않는다.
얼굴 크기도 고려해야 한다. 얼굴이 작은 사람은 이식하려는 조직이 크면 잘라내면 되지만, 이식하려는 조직보다 얼굴이 클 때는 얼굴을 덮을 조직이 부족해 문제가 된다. 또 수술 부위에 흉터가 심하게 남기 때문에 남의 눈을 속일 만큼의 완벽한 페이스오프는 어렵다.
올해 개봉된 한국영화 ‘더 게임’은 한 돈 많은 노인이 청년의 젊은 몸을 갖기 위해 뇌와 척수를 통째로 맞바꾼다는 설정. 두 사람은 외모를 서로 교환하면서 자신의 기억과 생각은 고스란히 유지하게 되는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 또한 불가능하다. 신체 장기의 이식술이 크게 발전했지만 아직까지 뇌 이식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뇌 이식 도중 수많은 뇌세포가 손상될 위험이 크고, 한번 손상된 뇌세포는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뚱뚱녀’에서 8등신의 날씬한 미녀로 변신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 ‘미녀는 괴로워’. 이 영화의 중심인물인 ‘한나’(김아중)는 얼굴은 물론 가슴, 뱃살, 다리 살, 엉덩이 등 전신성형을 통해서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인물 ‘제니’로 태어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많은 여성들이 실제로도 이런 변신이 가능한지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큰 이슈가 됐다.
(도움말=정태영 압구정서울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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