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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3일 0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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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 대비한 생존훈련 탐방기
소유스 우주선은 지구로 귀환할 때 낙하산에 매달려 러시아 초원지대에 착륙한다. 그러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 헬리콥터가 착륙지점으로 날아가 우주인을 구조한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우주인 수백 명이 안전하게 우주에 다녀왔다.
하지만 귀환 도중 대기가 불안정하거나 우주선 제어시스템에 이상이 생기면 예상착륙지점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에 불시착할 수도 있다. 불시착한 우주인은 우주선에 미리 준비된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구조대와 연락이 닿을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실제로 소유스 우주선은 예상착륙지점에서 700km 떨어진 우랄산맥 한 가운데에 불시착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 최초 우주인이 탄 소유스 우주선이 이상기류로 예상착륙지점에서 300km 떨어진 곳에 착륙하기도 했다.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씨와 예비우주인 고산 씨는 이를 대비해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4일까지 가 러시아에서 겨울철 생존훈련을 받았다. 이번 훈련은 소유스 우주선이 눈 덮인 산악지대에 불시착했다고 가정하고 실전과 거의 똑같이 진행됐다. 우주인들에게는 고작 3일치 비상식량과 물 6L, 그리고 무전기와 신호탄만 주어졌다.
우주인들은 먼저 방한복으로 모두 갈아입고 피난처를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ㄷ’자 모양으로 벽을 만들고,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우주선에서 떼어낸 낙하산을 바닥에 깔았다. 그 사이 선장 역할을 맡은 올레크가 계속해서 무전기로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시끄러운 잡음만 돌아왔다.
날이 저물자 기온이 영하 15℃로 뚝 떨어졌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이들은 모닥불 둘레에 모여 앉아 초콜릿과 비스킷, 그리고 트보로크(우유로 만든 러시아 전통음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우주인들은 비상식량 주머니 안에서 찾은 홍차를 끓여 마시다 이내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차가운 눈으로 얼굴을 비벼 세수를 하고 비스킷으로 식사를 대신한 세 우주인은 나무와 낙하산 천을 이용해 원뿔 모양의 인디언텐트를 짓기 시작했다. 조난 상황이 길어진 경우를 대비해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는 훈련이다.
인디언텐트에서 하루를 보낸 뒤 동이 트기가 무섭게 우주인들은 짐을 챙겨 눈밭으로 나섰다. 텐트에는 숯으로 자신들이 언제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리는 표식을 남겼다. 훈련의 마지막 관문은 우주인 가운데 한 명의 다리가 부러진 상황을 가정해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는 곳까지 옮기는 것. 시간은 단 40분.
고 씨와 올레크는 능숙한 솜씨로 환자 역할을 맡은 옐레나의 다리에 부목을 대 응급처치를 했다. 그리고 그를 낙하산에 눕힌 뒤 앞에서 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숨이 턱에 차도록 내달렸다.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쳐 달리기를 10여 분. 사방이 트인 목적지에 도착하자 올레크가 신호탄을 터뜨렸다. 구조 헬리콥터 대신 나타난 훈련 감독관은 세 사람에게 “수고했다”며 훈련종료를 알렸다.
고 씨가 훈련을 마친 이튿날, 이 씨도 러시아 공군조종사 출신 우주인 2명과 팀을 이뤄 생존훈련을 시작했다. 전날에 비해 기온이 더 떨어진 데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 관계자들을 잔뜩 긴장시켰다.
하지만 이 씨도 동료 우주인들과 협력하며 인디언텐트도 짓고 구조신호를 보내며 2박3일 동안 큰 탈 없이 훈련을 마쳤다. 훈련 마지막 날 이 씨는 “잠잘 때 동료 우주인의 코고는 소리가 심했다는 점만 빼면 훈련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번 훈련의 책임자인 가가린우주센터의 알렉산더 게르만 중령은 “동계생존훈련은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우주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협동심을 함께 평가한다”며 “두 사람이 러시아 우주인들과 이룬 팀워크가 돋보였다”고 칭찬했다.
<안형준 기자의 ‘한국 우주인, 겨울철 생존훈련 생생 현장’에서 발췌 및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