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의료분쟁 입법 어떻게 해야 하나

  • 입력 2007년 3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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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의료사고와 관련된 민사소송만 해도 2000년 519건에서 2005년 현재 867건으로 증가했다. 의료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하기 위한 의료분쟁조정법 또는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제정이 근 20년째 표류하자 시민단체가 최근 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논의되고 있는 관련 법안 중 논란이 되는 부분을 정리한다.》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하루 빨리 도입해야

지난해 초 갑상샘(갑상선) 환자와 위암 환자의 차트가 뒤바뀌어 멀쩡한 환자의 갑상샘과 위를 바꿔서 절제한 의료사고가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불렀다. 의료사고의 심각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였다.

지금까지 의료사고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에 적게는 4000명에서 많게는 2만7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사망 원인 가운데 암과 뇌혈관 질환에 이어 세 번째인 심장질환보다 많은 수치다. 의료사고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임을 보여 준다.

더욱 충격인 사실은 이처럼 병원이나 의사의 과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료사고는 원인도 모른 채 피해자가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주로 합의나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원인 규명이 어렵고, 최종 판결까지 5∼6년이 걸릴 뿐 아니라 승소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경제적,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는 의료진과 합의해 적당히 해결한다.

실제로 해마다 1만 건 이상 의료 분쟁이 발생하지만 해결 방법은 여전히 원시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 제출된 지 18년째인데 여전히 표류 중이다. 1989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6차례나 의료분쟁조정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 입법이 되지 못했다.

반드시 제정돼야 할 법이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자인 피해자와 의료진 간의 인식 차는 물론이고 정부 부처 간에도 법리 해석을 둘러싸고 관점이 많이 다르다. 피해자인 환자 측에선 무엇보다도 입증 책임의 전환을 절실히 요구한다.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의 제정을 바라는 시민단체도 이 부분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법 체계상 의료 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할 책임은 기본적으로 원고인 피해자에게 있다. 관련 증거와 정보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는 피해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의료기관이 제시한 일방적 합의 조건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른다.

의료라는 전문적 영역에서 절대적 약자의 위치인 환자나 가족을 위해 의료인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게 하는 입증책임 전환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법 제정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의료사고를 당사자 간의 해결이라는 전근대적 방식으로 내버려 두기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 입법 주체인 국회는 이해 당사자의 눈치만 보지 말고 적극적인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 의료사고 피해는 당사자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강창구 의료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의료분쟁 조정법’ 통해 실효성 있는 중재를

의료기관에서 피해 환자의 농성이 심각했던 1980년대 말 의료계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하도록 정부에 건의했다. 이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을 입법청원했지만 과실책임주의에 반하는 ‘무과실 배상’에 대한 내용 때문에 매번 입법이 좌절됐다.

차기 임시국회는 의료분쟁 조정에 관한 법안과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안을 병합해서 심의할 예정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의 보장과 의료분쟁의 조정을 위한 절차를 규정해 국민의 건강 및 재산상 피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고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필자는 의료분쟁조정법이 타당하다고 본다. 조정제도는 당사자의 주장을 듣고 제3자인 의료분쟁조정위원이 조정안을 마련해 손쉽게 분쟁을 해결하자는 제도이다. 의료사고 관련 재판은 1심 판결에 평균 2년 7개월(933일), 2심 판결에 3년 10개월(1397일)이나 걸리는 등 큰 단점이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10년 전부터 의료사고 소송의 일부 판례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료사고가 의술의 과실 때문이 아님을 의사에게 입증시키는 방법은 문제해결 방식으로서 최악이라는 비판이다.

의사로 하여금 방어적 의료를 하게 하고 의사와 환자 또는 병원과 환자 사이에 불신을 더욱 깊게 하면 궁극적으로 의사와 환자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의사가 의료사고와 소송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진료하고, 사고 위험성이 높은 전공과를 기피하면 피해가 결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분쟁 해결의 궁극적인 목표는 피해자 손해의 보상이다. 따라서 심사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환자가 수긍할 보상재원을 어떻게 만들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서 공공재원에 의한 보상방식을 채택하지 않고는 조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피해구제 범위와 기금 마련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되지 않는 한 실효성 없는 법안이 된다.

의료사고 보상을 위해 의료피해 구제기금을 조성해야 한다. 의료분쟁은 의사의 과실인지 불가항력적인지 구분이 모호해 서로의 주장이 팽팽할 때 유발된다. 의료분쟁조정법은 현대의학으로 예견되지 않고 피하기 어려운, 다시 말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 피해를 보상범위에 넣어야 한다.

의료행위 자체는 위험을 안고 있다. 신체의 예외적 상황으로 의료가 완벽할 수는 없다. 환자의 증상이 정형화되지 않아 정상적인 진단과 처치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고 돌발적이며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의료피해 구제기금은 국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보험자단체, 의료기 제조회사 등이 공동으로 부담하면 된다. 또 조정제도의 정착을 위해 조정의 실효성과 강제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의료법에 따라 의료심사조정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

정효성 대한병원협회 법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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