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패 대신 마우스 쥔 노름꾼들…성인PC방 ‘도박장’ 성업

  • 입력 2006년 7월 5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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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까지 파고든 성인 PC방. 경찰이 도박장 개설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에 출동해도 도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와 서버를 끊는 방식으로 단속을 빠져나간다. 박영대  기자
주택가까지 파고든 성인 PC방. 경찰이 도박장 개설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에 출동해도 도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와 서버를 끊는 방식으로 단속을 빠져나간다. 박영대 기자
《3일 오후 9시 인천 연수구 연수동 주택가 골목의 한 성인 PC방. 50여 평의 PC방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손님은 대부분 30, 40대 남성.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40대 남성이 지갑에서 20만 원을 꺼내들며 “아가씨” 하고 불렀다. 10대 여종업원이 다가와 “20개요?”라고 확인한 뒤 돈을 받아갔다. 출입문 입구 계산대에서 여종업원이 주인에게 돈을 건네자 컴퓨터 화면에 게임머니 20만 원이 입력됐다는 메시지가 깜빡였다.》

9번 컴퓨터에 앉아 있던 30대 남성이 “야호” 하며 탄성을 질렀다. 5명과 포커게임을 해 한판에 120여만 원을 땄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 남성은 한 시간이 채 못 돼 돈을 다 잃고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는 “하룻밤에 100만 원을 잃은 적도 많다”며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돈이 생기면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노름꾼이 몰리는 ‘하우스’처럼 게임이 끝나면 10%의 수수료를 떼기 때문에 돈을 따더라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의 K(42) 씨는 “최근 두 달 사이 동네에 도박게임을 하는 성인 PC방이 우후죽순으로 늘었다”며 “일부 업소는 단속을 피해 PC방 밖 승용차에서 환전한다”고 말했다.

도박을 일삼는 성인 PC방이 주택가까지 파고들고 있지만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개장부터 영업,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법망을 교묘히 피하기 때문.

PC방은 세무서에 사업자등록 신고만 하면 되는 자유 업종. PC방으로 신고하고 간판을 ‘성인 PC방’으로 내걸어도 막을 방법이 없다.

경찰은 전국의 성인 PC방을 4000여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PC방 업주는 도박비의 10% 정도를 수수료로 챙기고 이 중 30% 정도를 ‘바둑이’ ‘포커’ 같은 도박 프로그램을 제공한 업체에 넘긴다.

설비를 갖추고 200만∼1000만 원의 프로그램을 제공 받으면 현금이 굴러들어온다. 주택가의 작은 PC방도 한 달 수입이 수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무 당국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PC방 현황 자료를 주지 않아 경찰은 단속에 애를 먹는다. 현장을 덮치면 업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와의 서버를 끊어 증거를 없앤다.

도박개장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PC방 업주의 경우 증거 부족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도박프로그램 개발자는 3월 사행 행위 관련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처벌 대상이 됐지만 적발이 쉽지 않다. 단속에 나섰던 경찰관은 “업주를 입건해도 벌금 몇 푼만 내고 계속 영업한다”면서 “잘되는 곳은 반나절이면 벌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단속에 콧방귀만 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조직폭력배가 성인 PC방 운영에 관여해 단속이 더욱 어렵다. 경찰이 출동하면 밖에서 무전기로 알려 서버를 끊어 버리는 식이다. 경찰은 5일부터 넉 달간 PC방 전용 회선을 차단하고 불법 게임기를 압수하는 등 사행성 게임장 특별 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인원이 부족하고 처벌 법규가 미비해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도박PC방 운영 석달새 530억 챙겨▼

성인도박 PC방 업체와 불법 도박프로그램 개발회사가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울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4일 불법 도박프로그램을 이용해 성인도박 PC방 사업을 벌인 혐의(도박장 개장 등)로 G성인도박 PC방 대표 김모(35) 씨 등 6개 성인도박 PC방 대표와 N프로그램 제작사 대표 이모(33) 씨를 포함해 7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J성인도박 PC방 업체 대표 박모(39) 씨와 종업원 등 34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 등은 서울과 대구에 본사를 두고 4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280여 개 성인도박 PC방 가맹점에 불법 도박프로그램과 컴퓨터를 제공하고 손님들을 상대로 763억 원어치의 사이버머니를 팔아 정산금을 제외한 530억 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5월 24일 포커와 고스톱 등 불법 도박프로그램 9종을 제작해 G사에 팔고 서버를 관리 운영해 주는 명목으로 3억4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성인도박 PC방 본사는 가맹점으로부터 딜러비 명목으로 전체 부당이득의 5∼16%를 나눠 받았으며 도박프로그램 제작사는 프로그램 판매대금 외에 서버를 관리해 주고 수익의 40%를 받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사이버머니를 구입해 ID와 패스워드만 받으면 개인용 컴퓨터(PC)에도 도박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다는 PC방 업주와 프로그램 제작사의 말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 제작사와 11개의 성인도박 PC방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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