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코리아]제1부 이것만은 고칩시다<3>네티켓 실종

  • 입력 2005년 1월 14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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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인격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이 소설처럼 겉으로는 예의 바른 ‘지킬’이었다가 사이버 공간에만 들어가면 난폭한 ‘하이드’가 되는 누리꾼(네티즌)이 많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사용 인구 또한 급속도로 늘었지만 올바른 사용문화(네티켓)는 아직 정착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지적한다.

회사원 김모 씨(30·여)는 인터넷에서 이유 없이 자신의 글에 수차례 ‘악의적 댓글(악플)’을 단 사람을 찾아달라고 최근 경찰에 신고했다. 모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한 김 씨는 자신의 글마다 ‘×× 같은 △아, 너 알바(아르바이트)지?’ 등의 욕설을 담은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카페 활동도 중단했다.

심지어 지난해 5월에는 김모 씨(28)가 4년간 활동했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른 회원들과 논쟁을 벌이던 중 여러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다.

한 청소년이 인터넷 게시판에 여러 네티즌이 올려놓은 비방성 글들을 살펴보고 있다. 김미옥 기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산하 사이버명예훼손·성폭력분쟁조정센터에는 1주일에 평균 100∼120건의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이 중 70∼80%가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당해 피해구제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다.

재미 삼아 비방글을 쓰거나 욕설을 담아 댓글을 달지만 이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 우리 인터넷 환경의 현주소다.

인터넷 문화평론가 홍윤선(洪允善) 씨는 “인터넷 매체의 특징 중 하나가 ‘인격의 생략’인데 인터넷 쇼핑이나 뱅킹처럼 인격 개입 요소가 없는 경우와 달리 채팅이나 게시판처럼 인격이 개입되는 경우엔 매체 성격상 항상 언어폭력 욕설 비방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미 우리 사회가 사이버 공간의 편향성과 결합돼 자기중심의 감정적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단순한 사이버 문화 캠페인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문래초등학교는 지난해 4월부터 일주일에 1시간씩 수업시간과 재량활동시간에 미디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육시간에 ‘네티켓’이라는 용어와 ‘네티켓 10원칙’에 대해 배운다.

학생들은 직접 ‘폭탄쪽지 보내지 말아요’ ‘채팅어를 쓰지 말아요’ ‘욕설은 안 돼요’와 같은 ‘채티켓’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

미디어교육 담당 윤소영(尹小永) 교사는 “아이들이 교육시간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자세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난 뒤부터는 인터넷상에서도 직접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예의바르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문화 수준을 한층 높이려는 움직임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비롯해 사이버수사대, 학부모정보감시단 등 여러 기관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성균관대 단국대 등 7개 대학에서도 봄 학기부터 ‘인터넷 윤리’를 교양과목으로 채택할 계획이다.

한신대 조성호(曺成昊·정보통신학) 교수는 “사이버 세계에서의 윤리 확립은 단순히 법 제정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자신의 표현에 책임을 지자’는 범국민적 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는 자신의 글을 읽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글을 올리기 전에는 10초만이라도 더 생각해 보는 ‘여유’가 필요한 때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윤용강 씨(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 3년)가 참여했습니다.

▼일부사이트 ‘욕설 필터링’ 도입▼

이용자의 수도 많고 연령층도 폭넓은 온라인게임과 채팅사이트들은 특히 반말 욕설 비방 등이 난무하는 곳. 각 업체는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거친 말을 걸러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저’ 등 30여 개의 온라인게임을 운영하는 넥슨닷컴의 하루 동시 접속자는 50만여 명.

이 사이트 게임 사용자들의 행태를 분석한 결과 보통 1인당 게임 13회마다 한 번 정도 욕설을 하며, 일부는 게임에서 질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상대방에게 욕을 퍼붓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이트는 약 320개의 ‘금지어’를 정해 두고 사용자가 이 단어를 쓰게 되면 다른 말로 바꿔서 화면에 출력하는 ‘욕설 필터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개××X’는 ‘저런 나쁜 애’로, ‘씨×’은 ‘쩝’, ‘지랄’은 ‘심하군’으로 바뀌는 식.

채팅사이트 ‘세이클럽’에서는 지난해 욕설에 따라 멜론이나 키위 같은 과일 아이콘이 뜨도록 했지만 이를 재미로 악용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 올해부터 욕설을 별표(*)로 대체했다. 온라인게임 ‘리니지2’에서는 욕설이 땀 흘리는 이모티콘(--;;)으로 변한다.

‘스카이러브’에서는 채팅 중 욕설이나 금기어를 입력하면 모두 ‘불량단어’라는 글자로 바뀌어 출력된다. 세이클럽의 박경제 대리는 “현재 금지어가 1100개에 이르지만 새로 생겨나는 욕설이 많아 매달 1회씩 금지어 목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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