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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6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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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의대 신경정신과 채정호 교수팀은 1999년부터 4년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40대 남녀 27명의 뇌파를 조사했다. 이 장애는 과거에 ‘죽을 것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이 몸은 회복됐어도 평생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가정과 사회에서 정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의 생존자, 산업재해 피해자 등도 일부 포함됐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환자 뇌에서 고등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의 뇌파가 정상인에 비해 지나치게 단조로운 패턴을 보였다.
채 교수는 “인지기능이 활발할수록 뇌파는 단조로움이 줄고 복잡해진다”며 “이번 결과는 과거의 사고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유연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강하게 집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공포감을 담당하는 영역인 변연계의 뇌파는 복잡한 정도가 정상인보다 훨씬 심했다.
이 논문은 미국의 전문지 ‘정신의학연구’에 조만간 게재될 예정이다.
채 교수는 “최근 이들 환자를 대상으로 뇌 혈액의 흐름을 조사하자 예상대로 전두엽에는 혈액이 적게 공급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두엽 부위의 기능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변연계의 기능은 지나치게 활성화돼 있었다.
이처럼 과거의 충격이 뇌의 기능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 교수는 “미국 통계에 따르면 무려 남성의 5%, 여성의 10%가 이 장애로 시달리고 있다”며 “각종 대형사고나 폭력이 빈번한 한국의 경우 결코 환자 수가 미국보다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드러나는 증상은 과도한 각성상태. 항상 긴장돼 있어 길거리에서 누가 말을 걸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군인으로부터 심한 성적 모욕을 당했다면 군복만 봐도 공포감에 휩싸인다. 즉시 도망가는 일은 당연지사. 잊으려고 애를 쓰지만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사고가 난지 한 달이 지나도 계속 이런 증세가 반복되면 의학적으로 ‘환자 판정’이 난다.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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