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발달로 근무조건 악화?…'농땡이族'은 그래도 논다

  • 입력 2003년 5월 16일 20시 02분


코멘트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화이트칼라의 근로조건은 더욱 악화됐다. 당신이 컴퓨터를 켜는 순간 상사는 당신이 몇 시에 출근했는지를 안다. 많은 직장에서 쓰고 있는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 때문이다. 이 서비스를 켜고 끄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다. 일찍 출근한 것처럼 항상 저고리를 의자에 걸쳐놓는다든지, 퇴근 안한 것처럼 사무실 불을 켜놓는 전통적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농땡이들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5일 다양한 위장 근무 수법을 소개하면서 사무직의 노동윤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그 요약.》

덴버시의 기술직 노동자인 데이비드 위스커스는 몇 시간째 사무실을 비우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부지런한 위스커스’가 점심시간에도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식당에 앉아 리모컨으로 컴퓨터를 켜 문서를 보내며 심지어 인쇄까지 한다. GoToMyPC.com은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늦은 밤 업무용 e메일을 보낸다. 상사가 ‘오늘도 이 친구, 날밤을 새며 일하고 있군’ 하고 생각할 시간에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간단하다. e메일 시계를 활용하면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e메일을 보낼 수 있다. e메일 옵션에서 ‘몇 시 이전에는 e메일을 보내지 말 것’만 누르면 된다. 오는 e메일도 야후 바이 폰(Yahoo By Phone)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해변에서도 전화로e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 제니(Jenni)로 명명된 컴퓨터 음성이 e메일을 읽어준다.

메신저를 켜 놓더라도 잠시 컴퓨터를 쓰지 않으면 당신의 이름 옆에 ‘자리비움’이 표시된다. 이걸 그냥 놔둘 농땡이들이 아니다. ‘자리비움’이라는 표시를 아예 없애버린다.

완전범죄란 쉽지 않다. 들고 다니는 무선 소형컴퓨터인 블랙베리(BlackBerry)로 e메일을 보내면 ‘블랙베리에서 보낸 메일’이라는 구절이 따라붙는다. 그럼 상사는 ‘흠, 이 친구, 사무실에 없나 보군’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 대비, 사무실의 데스크톱에서 보낸 e메일과 형식이 똑같게 맞춰 놓아야 한다.

최근 회사 인사 담당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53%가 종업원들이 노동시간을 속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6년간 8%나 늘어난 수치다. 노동윤리에 관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스튜어트 길먼 소장은 “종업원들이 골프를 하면서 일하는 것처럼 가장한다면 회사는 파산하고 말 것”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사용주들도 같은 기술을 활용한다. 트럭회사 사장인 스키프 코그힐은 한밤에 e메일을 보낸다. 무슨 내용이든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시간 나는 일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는 휴양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트럭의 위치를 파악한다. 있어야 할 곳에 없는 트럭 운전사에게 당장 문자 메시지를 날린다.

역시 중요한 것은 몇 시간을 일하느냐보다 얼마나 일을 하느냐다. 증권회사인 찰스 슈와브의 크레이그 프리케트 부사장은 “일은 하나도 안 해놨지만 오전 2시에 e메일을 보낸 직원에 대해 이 친구,열심히 일하고 있군 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습관적으로 3시간씩 점심 먹던 위스커스씨는 결국 해고됐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