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터넷]호기심의 門열면 ‘음란의 해방구’

  • 입력 2003년 4월 14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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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9시 A채팅 사이트의 ‘욕방놀이’ 공간.대화명 자체가 ‘X팔년’ 등 욕설로 돼 가입자 4명이 한창 욕설채팅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가 욕을 잘하나 경쟁하는 것으로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는 내용.

시간이 좀 지나자 채팅은 노골적인 성행위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음란대화로 바뀌었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A채팅 사이트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며, 욕방놀이 공간에 있던 4명은 남녀 청소년이었다는 사실. 한 청소년은 채팅 수위가 차츰 올라가자 “이건 좀 심하다”며 슬그머니 채팅방을 빠져나갔다.》

취재팀이 한국사이버감시단(단장 공병철)과 함께 9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청소년이 주로 방문하는 채팅 사이트들을 모니터한 결과 채팅 사이트를 이용한 음란대화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일 공유방은 음란물 ‘해방구’=10일 오전 1시 B채팅 사이트의 파일 공유방. “야동(야한 동영상) 있는 분 쩍지(쪽지) 주세요, 야애(야한 애니메이션) 있는 분 야동과 교환해요….” 파일 공유방 곳곳이 음란물을 서로 교환하고 다운받으려는 청소년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음란의 해방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파일 공유방 곳곳에 음란콘텐츠가 널려 있어 하루만 다운로드 받아도 음란물 홈페이지 하나를 구축할 수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개인도 돈을 받고 정보제공을 하는 사이트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용돈을 벌기 위해 음란물 수집에 나선 청소년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것이 한국사이버감시단 유규진 간사의 설명.

유 간사는 또 “최근에는 화상채팅이 인기를 끌면서 자신의 성기를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있다”고 전했다.또 어떤 고교생은 ‘초등학생만 들어와, 캐시 충전해 줄 테니까’라는 대화방을 개설해 놓고 아바타 등 선물을 미끼로 초등학생을 폰팅으로 유인하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손가락이 마술처럼 움직였다’=취재진은 ‘욕설방’에 음란한 욕을 올려놓은 초등학교 여학생에게 그 어린이가 쓴 ‘욕 내용’을 본인에게 되돌려보내 준 뒤 인터뷰를 시도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이 학생은 대답했다.

“친구와 싸워 기분이 울적해 욕구경만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욕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이 마술처럼 움직였다. 내가 썼다는 파일을 보고 너무 부끄럽고 놀라워 숨이 막혔다.”

한국사이버감시단 공병철 단장은 “부모나 교사들은 채팅, 파일공유, 메신저 등의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며 “TV 시청 지도를 하듯이 인터넷 사용 문화에 대한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란화를 부추기는 어른들=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채팅 사이트의 ‘음란화’ 뒤에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성인, 청소년, 어린이를 가리지 않는 음란 스팸메일이 넘쳐나면서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자연스레 노출된다는 것.

1월 20일부터 청소년에게 음란 스팸메일을 보낸 업체를 단속 중인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3월 말 기준으로 총 228개의 포르노사이트 운영업체를 적발했다. 그런데 이 중 80%인 184개 업체가 모두 해외서버를 통해 e메일을 보내 수사당국이 이를 수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음란 스팸메일 발송업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외국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ISP)의 서버를 이용한다.

음란 스팸메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메신저를 이용한 ‘음란 광고’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메신저에 접속한 뒤 ‘친구찾기’ 기능을 악용해 ‘표적’ 대상이 나타나면 무작위로 음란 스팸쪽지를 보내 음란물 접속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모니터를 하고 있는 중에도 수많은 음란 스팸쪽지가 사이버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취재팀▼

김태한(팀장) 공종식 나성엽 홍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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