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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2월 8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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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휩쓸고 있는 ‘아크릴아미드’ 파동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 4월 스웨덴 국립식품청이 감자튀김, 아침에 먹는 시리얼, 구운 빵에서 이 물질을 처음 발견한 뒤 유럽 전역과 미국, 일본에 이어 지난달에는 한국에서도 감자칩과 프렌치프라이에서 이 물질이 나왔다.
아크릴아미드는 쥐에게 암을 일으키지만, 사람에 대한 발암성은 확인되지 않은 ‘발암 가능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왜 이것이 음식에서 저절로 생기는지 몰라 전전긍긍해왔으나 최근 영국과 스위스 연구팀이 ‘메일라드 반응’이 주범이란 사실을 밝혀내 겨우 체면을 세웠다.
메일라드 반응은 포도당과 아미노산이 반응해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고온에서만 일어난다. ‘갈변화 현상’으로도 불리는 이 반응은 음식의 향과 맛을 좋게 해 수십 년 동안 식품회사들이 과자와 칩 그리고 빵을 구울 때 즐겨 써왔던 ‘조리 비법’이다.
오븐에서 빵을 구우면 뜨거운 열에 노출된 겉부분이 갈색으로 변해 구수한 맛을 낸다. 이것이 대표적인 메일라드 반응이다. 이 반응은 1912년 프랑스 과학자 루이 까미유 메일라드가 발견해 이름이 붙여졌다.
식물이 생산해 우리가 먹는 포도당은 안정된 물질이어서 몸 속에 들어와도 다른 분자들과 여간해 잘 반응하지 않는다. 포도당은 6개의 탄소로 이루어진 육각형 고리에 산소와 수소가 강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생물이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포도당도 170~180℃로 가열하면 마치 찍찍이처럼 아미노산과 잘 달라붙는다. 그래서 식물이 스스로 만드는 아스파라긴 같은 아미노산이 포도당과 반응해 아크릴아미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빵과 과자를 구울 때 오븐의 가열 온도가 대개 170℃이상이다. 아크릴아미드는 서구의 ‘오븐병’인 셈이다. 프렌치프라이나 칩에서 아크릴아미드가 나오는 것도 고온에서 기름에 튀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전통 음식은 굽거나 튀기는 법이 없다. 우리의 과자인 떡, 송편, 절편은 쪄서 만든다. 탕과 찌게는 끓이고 고기는 삶아먹는다. 찌거나 삶으면 온도가 100℃를 크게 넘지 않는다. 게다가 고기를 삶으면 태워서 발암물질이 생기지도 않고 기름도 빠져 비만을 예방한다.
미국식품의약국(FDA)도 “120℃ 이하에서 가열된 음식에서는 아크릴아미드가 검출되지 않으므로 음식을 고온에서 장시간 튀기거나 굽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 조상은 ‘메일라드 반응’의 위험성을 알았던 뛰어난 화학자였는지도 모른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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