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물리학회 50돌기념 5개국 석학 초청좌담회

  • 입력 2002년 10월 29일 18시 09분


일본, 중국, 미국, 영국, 한국 물리학회장들이 21세기 물리학의 발전 전망과 인간 생활의 변화에 대해 열띤 토의를 하고 있다.-전영한기자
일본, 중국, 미국, 영국, 한국 물리학회장들이 21세기 물리학의 발전 전망과 인간 생활의 변화에 대해 열띤 토의를 하고 있다.-전영한기자

《20세기는 흔히 ‘물리학의 시대’로 불린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빅뱅이론 등 혁명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 21세기에 물리학은 얼마나 발전할까. 한국물리학회와 동아사이언스는 한국물리학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25일 한양대에서 일본, 중국, 미국, 영국, 한국 등 5개국 물리학회장을 초청해 ‘21세기 물리학의 도전’이라는 주제로 국제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기타하라 가즈오 일본물리학회장, 첸 지아어 중국물리학회장, 피터 윌리엄스 영국물리학회장, 윌리엄 브린크만 미국물리학회장, 송희성(宋熙星) 한국물리학회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민동필(閔東必)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맡았다.》

▽민동필〓우선 20세기 물리학의 업적과 공헌은 무엇인가.

▽윌리엄스〓나는 1945년에 태어났다. 그 때는 정말 흥분의 시대였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물질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노트북, 디지털 카메라, 녹음기 등 이 방에 있는 전자 제품을 보라. 물리학은 삶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DNA의 발견을 비롯해 20세기 후반 생명과학의 발전은 물리학 덕분에 이뤄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민동필〓그렇다면 21세기에 물리는 무엇을 밝혀낼 수 있을까. 21세기에도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위대한 발견이 이어질까.

▽브린크만〓생명과학 발전에 물리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아직 개발 단계로 어디까지 발전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21세기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줄 수 있다. 우주의 암흑물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빅뱅(대폭발) 이후 우주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주의 모든 힘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도 남아 있다.

▽첸〓중력을 포함한 모든 힘들을 통합하는 이론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안될 이유가 없다. 다만 올바른 직관과 이를 뒷받침할 수학이 필요하다.

▽송희성〓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 고온초전도체, 나노기술, 기상 예측 등 많은 자연의 비밀을 해결하는데 물리학이 공헌할 것이다.

▽민동필〓우리의 일상 생활은 물리학을 통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브린크만〓미래는 상호 통신을 통해 정보를 얻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새로운 통신 방법들이 물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윌리엄스〓미래에는 하이브리드 칩을 만들어 머리에 넣어 휴대폰 없이 생각만 해도 통신을 할 수 있고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기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시끄럽게 대화하는 것을 듣지 않아도 된다. 이번 세기에 많은 병이 치유될 것이다. 여기에 물리학도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다. 다른 천체에서 온 생명의 증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외계 DNA를 찾아내 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기타하라〓나노 과학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어질 것이다.

▽민동필〓양자역학이 우리의 생활은 물론 철학과 가치관을 바꿨다. 미래에 물리학은 종교, 윤리, 사회구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떤 과학자는 과학이 계속 발전하면 인류는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브린크만〓물리학은 문화이자 철학이다. 이번 세기에는 우리는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의식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윌리엄스〓‘더 많이 알게 될수록, 더 많은 것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물리를 알수록 영혼의 영역이 줄어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물리가 영혼의 영역을 여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타하라〓물리학은 인류의 평화에 공헌한다. 물리학을 연구하기 위해 우리는 성별, 인종, 국가에 상관없이 협력한다. 최근 유네스코는 요르단에 방사광가속기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 지역의 물리 프로젝트는 엄청나게 힘들겠지만 이 지역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유럽의 대형입자가속기(CERN)도 전쟁 직후 만들어졌고, 평화와 협력에 크게 공헌했다.

▽민동필〓최근 우수한 학생들이 기초과학을 기피하고 있다.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윌리엄스〓65살 먹은 정부 관료보다는 16살 고등학생의 관심을 끄는 것이 더 쉽다. 우리는 고등학생용 물리 CD롬 타이틀을 만들었다. 첫 장을 열면 자궁 안에 있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들어 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이 생명이고, 무엇이 화소(픽셀)고, 무엇이 정보인가를 묻는다.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때 더 어려운 질문을 한다. 물리학은 물리학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물리와 수학이 산업,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브린크만〓미국은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생명과학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NIH 원장은 “물리학 분야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물리 분야의 연구비가 올라가고 물리학의 인기도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학생들의 물리학과 지원이 약간 늘어나고 있다.

▽첸〓중국물리학회는 일반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시, 강연, 실험실 개방 등 다양한 물리 행사를 한다. 정부 관료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중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해 ‘21세기의 물리학’을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주룽지 총리가 이 강연을 듣고 물리학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데 동의했다.

▽기타하라〓현재 교육 시스템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죽이고 암기를 강조한다. 과학 교육 수준이 올라가려면 과학 교사들에 대한 봉급을 인상해 우수 교사를 확보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과학 대중화 활동으로 나고야에서 100명의 학부모를 초청해 과학 실험 활동을 하고 있다. 또 ‘갈릴레오 워크샵 그룹’을 만들어 고교 교사들이 교육 도구들을 만들도록 지원하고 있다. 여성물리학자도 늘려야 한다.

▽윌리엄스〓기초과학 진흥을 위해 영국에서는 기업과 대학이 학교 교육에 많이 참여한다. 한국도 대기업이 지역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대학이 지역 고등학교들을 ‘입양’해서 교수들이 학생들을 한 달에 몇 시간씩 지도한다.

▽브린크만〓요즘 물리학 교과과정을 보면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와 똑같다. 바꿀 때가 이미 지났다. 성공적인 몇몇 학과는 단순 강의에서 벗어나 흥미를 이끌어낸다.

▽민동필〓올해 노벨 과학상은 일본에서 많이 나왔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송희성〓왕도는 없다. 노벨상 수상은 스포츠 스타 양성과는 다르다.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네덜란드는 뛰어난 교육 시스템에 힘입어 1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고 한다. 우리도 새로운 학제간 분야와 젊은 세대에 투자해야 한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소가 되도록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이 기관이나 이 기관에서 교육받은 젊은 세대중 한 사람이 노벨상을 탈 것이다.

▽기타하라〓지난 몇 년 동안 일본은 노벨상을 받았다. 기초과학과 공학의 연결이 중요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교수는 폴리머(합성수지)를 연구했는데 그는 일본 화학계의 주류는 아니었다. 그는 캠브리지대의 공학적 배경을 갖고 있었고, 물리학자와 함께 일했다. 올해 물리학상을 받은 고시바 박사는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는 화학, 생화학 사람들과 매우 강한 연결망을 갖고 있었다.

▽윌리엄스〓한국의 경우 월드컵 우승까지 단지 한 골이 모자랐다. 나는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신문, 방송에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소개되며 모델이 된다. 정부는 젊은 학생들을 격려해 국제무대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

▽브린크만〓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었다.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고, 자기 분야의 연구에서 금메달을 따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연구를 하다 보면 노벨상은 온다.

정리〓김승환 포항공대 교수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사진〓전영한기자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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