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뇌의 신비]측두엽 모두 절개땐 '기억' 잃을수도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13분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흉기에 머리를 맞은 뒤 기억력이 사라져 모든 것을 꼭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아내를 살해한 사람에 대해 복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에 문신으로 표시하고 무슨 일이든 수첩에 적어두는 등 위태로운 삶의 조각을 이어간다. 그러나 아내를 죽인 사람은 다름 아닌 주인공 자신이었다. 인간은 기억을 바탕으로 살기 때문에 기억력이 소실된 인간의 행동은 위태롭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 이처럼 모든 기능이 정상인데 기억력만 선택적, 영구적으로 저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간의 기억이란 뇌 안쪽 측두엽의 간뇌-해마-편도체 회로가 담당하는데, 다른 부분은 남겨두고 이 구조들만 선택적으로 손상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아주 비슷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난치성 간질 발작을 앓고 있던 미국 코네티컷주 출신의 HM이란 남성이었다. 그는 1953년 당시 막 학계에 알려진 간질 수술을 받았다. 간질의 진원지인 뇌의 양쪽 관자엽(측두엽)은 모두 제거됐는데 편도체의 전부와 해마의 3분의 2가 포함됐다.

수술 후 그의 간질 증세는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당시로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그가 몇 살인지, 미국 대통령이 누군지, 심지어 그의 부모가 사망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기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기억에는 ‘서술 기억’과 ‘절차 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서술 기억은 어떤 상황, 예컨대 어제 친척이 방문한 것이나 내일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것 등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행위이다.

반면 절차 기억이란 숟가락질, 젓가락질, 자전거 타기 등과 같이 무의식적이며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저절로 기억되는 것을 말한다.

HM은 절차 기억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서술 기억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의사가 단어 세 개를 외우게 하고 이를 5분 뒤에 기억해 보라고 하면 그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사가 그런 요구를 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편도체와 해마가 선택적으로 손상된 거의 유일한 실제 인간인 HM은 기억 기능에 관한 모든 귀찮은 검사에 기꺼이 응했고, 우리는 그를 통해 서술 기억은 해마와 관련되지만 절차 기억은 이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HM의 경우를 거울삼아 그 후 측두엽 절개술은 반드시 한쪽만 시행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더 이상의 HM이 발생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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