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인터넷만의 산업혁명은 없다

  • 입력 2002년 6월 16일 20시 11분



“이 땅에서 백화점을 몰아내겠습니다.”

인터넷과 닷컴 열풍이 불던 1999년 6월. 인터넷 쇼핑몰인 한솔CS클럽이 각 신문에 낸 도발적인 광고 문구다. 인터넷 폭풍은 모든 산업을 예외 없이 강타했다. 자동차 전자 철강 화학 등 대부분의 산업에서 기업간 전자상거래(B2B)와 기업과 소비자간 전자상거래(B2C)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삼성 LG SK 등 주요 그룹은 e비즈니스 전략을 마련하고 벤처투자에도 나서는 등 인터넷 열풍에 휩싸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각 산업분야에서 인터넷 때문에 순위 변동이 일어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오히려 백화점이 인터넷 쇼핑몰에도 진출하면서 인터넷 쇼핑몰업체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것처럼 인터넷비즈니스에만 특화한 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삼성은 각 계열사의 인터넷비즈니스를 총괄하던 e삼성을 해체하는 등 각 그룹은 인터넷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인터넷이 기업에 가져올 변화에 대한 예측은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 것일까.

▽절반의 진실〓인터넷이 가져올 혁명에 대한 예측은 상당부분 현실화됐다. 정보정책통신연구원 손상영 박사는 “인터넷이 없을 경우 사람들과 기업들이 겪을 불편함을 예상하면 3년 간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강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개인용 컴퓨터 보급률 60%, 초고속 인터넷 가입 810만가구, 인터넷 사용인구 2430만명, 온라인 주식거래율 70%.

인터넷이 없으면 기업들은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구매 생산 마케팅 영업 물류 등 각 부문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부서는 한 곳도 없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면 주식시장은 당장 올스톱될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측은 여기까지가 ‘참’이다.

인터넷 폭풍이 가장 거세게 불 것으로 예상됐던 유통업계도 여전히 롯데 현대 신세계 등 기존의 강자들이 군림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은 2200여개가 생겨났지만 흑자를 낸 곳은 한 곳도 없다. 올해 처음으로 삼성몰 인터파크 한솔CS클럽 등이 적자를 면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이 백화점을 위협하지는 못한다.

금융업도 마찬가지. 온라인 주식거래의 확산은 증권업계의 지도를 바꾸지 못했다. 2000년초 영업을 시작한 순수온라인 증권사인 키움닷컴은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넘는 삼성증권 현대증권 LG증권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일부 중소 온라인 증권사들은 막대한 IT투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신산업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됐던 금융포털업은 200여개 업체가 등장했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10여곳도 안 된다. 생존 업체들도 기업전략을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

▽‘황금’에서 ‘공기’로 바뀐 인터넷〓인터넷과 관련한 예측 중 상당수가 빗나간 것과 관련해 컨설팅업체인 모니터 컴퍼니의 한만현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은 특별한 상품이 아니라 전기나 도로처럼 사회기반시설에 해당된다.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고 전략에 통합될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인터넷의 이런 특성 때문에 인터넷은 전통기업이 활용할 때 그 영향력이 더욱 크다. 롯데 현대 신세계가 신설한 온라인 쇼핑몰은 시작은 늦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제품에 대한 신뢰나 상품배송에서 백화점이 순수온라인업체보다 더 낫다고 많은 소비자들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가전 등 주요 업종의 B2C도 마찬가지. Car123, 리베로 등 인터넷자동차 판매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관행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2년 만에 이들 업체는 살아남는 데 급급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Car123을 창업한 서울대 경영학과 주우진 교수는 “애프터서비스 등 신뢰성의 문제 때문에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한 자동차 구입을 기피하고 자동차 회사들도 기존 영업망 파괴를 막기 위해 인터넷 판매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온라인판매상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B2B업체들도 마찬가지. 산업마다 수많은 B2B업체들이 생겨났지만 수익을 거두는 곳은 제조업체들이 주주로 참여한 회사들뿐이다. 제조업체들이 인터넷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중간상을 배제하고 자신들이 직접 B2B회사를 경영하기 때문. 화학제품 B2B업체 중 종합상사들이 주도한 켐라운드는 올해 3월 문을 닫았지만 LG칼텍스정유 현대정유 등 제조업체가 참여한 켐크로스는 거래가 날로 늘고있다.

▽인터넷의 위력은 이제부터〓지금까지 인터넷이 전통기업에 가져온 변화는 업무 효율화 부분이 크다. 구매비용 절감, 서류 없는 업무처리, 정보공유 등.

그러나 인터넷이 가져올 진짜 변화는 지금부터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SKT 차진석 상무는 “소리를 압축해 인터넷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기술로 기존 음반산업이 불황에 빠졌고 게임산업의 신산업 등장과 무선인터넷과 금융의 결합 등으로 인터넷은 각 산업의 융합이나 해체를 가져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연구원(KIET) 장윤종 디지털경제 실장은 “지난 3년 간의 실험은 기업에 인터넷 그 자체는 황금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었다”며 “그러나 인터넷은 전기나 도로처럼 사회의 주요 기반시설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인터넷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틀린 예측
예측현실예측이 빗나간 이유
기존 유통업체의 몰락극소수 인터넷 유통업체들만 생존인터넷 유통업체의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신과 배송에 대한 불만족
모든 산업분야에서 정보 중개업이 뜬다정보 중개업의 몰락 소비자들이 정보에 대해 가격지불 거부 및 제조업체들이 직접 정보 제공
B2B가 뜬다대부분의 B2B업체 몰락제조업체들이 직접 B2B회사 창업
인터넷을 통한 무역확산변화 별로 없음인터넷 시대에도 언어와 국가간 장벽 존재
기존 금융회사와 미디어 기업의 쇠퇴변화 별로 없음전통기업들이 인터넷을 수용하면서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회사 여전히 선호
전통기업이 브랜드 경쟁보다는 가격경쟁 직면할 것전통기업들 브랜드 전략 고수브랜드 가치 더욱 높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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