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서 추출 화상치료용 美‘인공피부’ 성형수술 전용

  • 입력 2001년 12월 25일 17시 52분


죽은 사람의 피부를 특수 처리해 주름살 제거, 귀두 확대 등을 위해 이식하는 성형수술이 크게 유행하고 있어 의학윤리 논쟁을 낳고 있다.

최근 서울 등 대도시에 있는 성형외과에서는 인공피부를 코 높이기 수술이나 주름살 제거술, 입술 확대 수술 등에 적용한 결과 부작용이 없고 수술 효과도 높다는 내용을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주로 여성을 중심으로 이 시술을 받게 해달라는 희망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같은 수술에 이용되는 인공피부는 기증받은 시신(屍身)에서 추출한 피부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거부 반응이 생기지 않도록 잔털과 세균을 없애고 화학적인 가공 방법을 통해 만들어낸 ‘알로덤(Alloderm)’이란 제품.

미국 라이프셀사가 화상 등 치료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상처에 붙이거나 주입하면 새로운 세포와 혈관이 형성되고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획기적인 치료제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제품이 화상 환자 치료보다는 미용 성형수술이나 음경 확대술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부 의원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환자들에게 정확히 알리지 않고 단순히 ‘인조피부’ ‘인조진피’ ‘두터운 종이와 같은 물질’ ‘첨단 물질’ 등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회사원 윤모씨(37)는 “인공피부를 넣는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귀두 확대 수술을 받았는데 나중에 내 음경에 다른 사람의 피부가 들어있음을 알게 돼 충격을 받았다”며 “아내와의 성생활 때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알로덤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97년. 대학병원 의료진들이 화상, 교통사고 부상, 선천성 기형 등을 치료할 목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1㎠에 1만5000원이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화상 환자의 치료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국소적인 미용 성형수술 등에 이용되고 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마에 생긴 주름살을 알로덤 시술로 제거하는데 드는 비용은 평균 300만∼350만원이지만 화상 환자를 치료할 때는 상처 크기에 따라 많게는 수천만원이 든다.

김수신(金壽信) 성형외과 원장은 “환자의 생명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수술에 시체의 피부 조직을 사용한다는 것은 의학 윤리에도 맞지 않다”며 “자신의 피부가 남의 주름살을 펴는데 사용된다는 것을 미리 안다면 아무도 피부를 기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도 미국의 조직은행연합회(AATB)처럼 피부 뼈 심장판막 각막 힘줄(腱) 등 인체 조직을 가공하고 분배하는 전문기관을 세우고 관련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있지만 기증된 사체에서 추출한 인체 조직과 관련해서는 해당 법률이 없어 유통과 분배 과정이 관계자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성형외과 의원 사이에는 국내에서 기증받은 시신을 이용해 만든 피부조직이 암암리에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 의사는 “최근 의료재 판매상이 알로덤을 대체할 국산 제품이라며 성형 수술에 사용해 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며 “상당수 성형외과 의원에서 국내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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