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젊은 '도사'들 인터넷 占집 '占령'

  • 입력 2001년 10월 3일 19시 32분


《“한복을 입고 골방에 앉아 쌀을 뿌리며 점(占)치던 시대는 이미 지났죠.”

지난달 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맨하탄 오피스텔 11층 애스크퓨처닷컴(askfuture.com) 사무실. 온라인상의 ‘최고의 점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수 사장(36)은 “점집 분위기를 느낄 수 없네요?”라는 말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같이 대답했다.

카페 같은 사무실에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모니터 앞에서 팬들의 운세를 보느라 분주했다.

“소송 관련 일을 하는 공심(公心·32)입니다.” “사주를 보는 서지수(35)입니다. 부사장이고요.” “막내 김형규(23)입니다. 주가지수 예측을 하고 있지요.” “풍수지리를 하는 형산(衡山·41)입니다.” 자신의 소개도 기존 역술인과 달리 독특했다.》

▽역술인들이 젊어진다?〓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 즐비한 사주카페, 각종 문화센터에 ‘약방의 감초’처럼 개설되는 역술강좌, 닷컴 수난시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각종 운세 사이트…. ‘음지’의 잡술(雜術)로 여겨졌던 역술이 최근 ‘양지’로 나오면서 젊은 도사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애스크퓨처닷컴은 소속 역술인 62명 가운데 20∼30대가 40%를 차지할 정도다. 이 사장은 “실력이 있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면서 “강호에 흩어진 고수(高手)들을 모으다보니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의 ‘원로급’ 역술인과 달리 젊은 도사들은 전문화를 지향한다. 이 사장은 대학원에서 중국경제학을 공부하고 외환딜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종합주가지수를 예측한다. 형산 정경연씨는 토목공학도로 풍수지리가 전공. 소송 관련 예측만 하는 공심 공태광씨는 사기 폭력 교통사고 등 ‘범죄자’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인터넷 점집답게 고객들도 젊다. 애스크퓨처닷컴의 경우 회원 5만명 가운데 20∼30대 고객이 75% 가량이다. 오프라인 점집의 최대 고객인 중년 아줌마 고객은 거의 없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변치 않는 것은 궁합 진로 재물운 등 고객들의 관심사. 사주닷컴(sazoo.com)이 4월말부터 5개월간 분석한 결과 △배우자 및 이성에 관한 문제(32.13%) △진로선택 및 시험운(16.33%) △사업방향 및 재물운(11.39%) 등에 관한 궁금증을 풀려는 질문이 많았다. 20대의 질문은 25% 가량이 궁합에 관련된 것이었고 남자보다 여자(73.45%)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독특한 역술서비스〓사주닷컴을 비롯한 인터넷 점집들은 고객의 질문과 역술인의 예측이 ‘밀실’에서 이뤄지는 오프라인 점집과 달리 질문 예측 상담내용 등을 모두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한다.

예측이 틀리면 고객의 불만이 즉시 게시판에 올라오기 때문에 역술인들은 ‘망신’뿐만 아니라 ‘해고’까지 각오해야 한다. 복채는 애스크닷컴의 경우 건당 1만1000원으로 휴대전화 요금에 합산돼 청구되는 ‘모바일 결제’가 기본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아리송한 예측은 금물. “올 9월에 주식투자하면 망한다” “내년 3월 중순에 이사한다” 등 분명해야 한다.

▽다양한 활동〓인터넷 점에도 ‘VIP 고객’이 있다. 애스크퓨처닷컴의 이 사장은 의사 교수 변호사 고위공무원 등의 질문에 A4 용지 한 장 정도의 답변을 해주고 20만원의 복채를 받는다. 고액이지만 월 평균 50여명이 이용할 정도. 물론 이들의 운세는 비공개다.

풍수지리도 명당을 봐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형산은 “풍수지리는 친환경적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백두대간을 보존하기 위한 환경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역술은 증권사 객장까지 진출했다. 지난달 24일 세종증권이 여의도지점을 개장하면서 김형규씨를 불러들여 ‘투자상담’을 한 것. 김씨는 투자시점을 알려주는 일 외에 고객과 투자상담사 사이의 궁합까지 봐주었다.

김승찬 지점장(35)은 “역술도 되풀이되는 사건을 얼마나 정확히 ‘해석’하느냐는 통계학”이라며 “예상 밖으로 고객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예측산업화하는 역술〓“왜 미국 테러를 예측하지 못했나요? 그러고도 역술가라고 말할 수 있나요?”

지난달 중순 미국 테러 직후 고객들로부터 불평과 불만, 질책이 쏟아져 들어왔다.

“주먹구구식으로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역술을 예측산업화하자고 설득했죠.”

이 사장의 말이다. 이 사장은 최근 직원을 홍콩 대만 일본 등지에 파견해 유명 역술인들로부터 자신의 사주를 받아오도록 했다. 이 사장은 한국의 역술이 경쟁력이 높은 ‘문화콘텐츠’라고 결론지었다.

유가 주가 등 각종 경제지표를 예측하고 기업의 신축건물 부지선정과 사무실 배치에 풍수지리를 이용하는 등 한국의 역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연구소를 마련할 계획이다.

“신사년(辛巳年)에 한국이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추석이 국운(國運)이 바닥을 치고 상승하는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될 것입니다. 내년 월드컵축구대회 특수는 예상보다 큽니다.”

이 사장의 예측이 맞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작명-해몽-궁합+α' 콘텐츠로 승부▼

“미국이 9·11 테러 참사 직후 길길이 뛰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전면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문둔갑법’으로 보면 미국의 올해 국운은…. 미국은 주변 국가와 인물들의 권유 등으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할 것이다.”(용회수 기을임연구소장)

운세사이트에는 이같은 세계적 문제를 비롯해 일반인들의 관심사에 대한 ‘예측’이 그득하다. “다저스 박찬호의 이적이 11월에 가시화된다” “추석 이후 주식 장세는 제한적으로 상승한다”는 등의 예측도 있다.

작명 해몽 궁합 등 전통적인 역술 서비스 외에 만화로 보는 주역, 음식궁합, 서양 타로카드점 등 다양한 콘텐츠로 신세대 네티즌들의 눈길을 끄는 사이트도 많다.

애스크퓨처닷컴 이수 사장은 “최근 유료 운세 콘텐츠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서 “온오프라인에서 예측을 사고 파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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