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두文化]디지털 캐릭터 '시드니' 주차장에 서다

  • 입력 2000년 7월 30일 20시 02분


김형찬〓이제 시드니를 영화 속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우리의 동료나 친구가 되도록 할 수는 없을까요?

윤송이〓도둑을 잘 잡는 개의 특성을 살려서 주차 장 관리원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요. 시드니가 주 차장을 지키는 거예요.

김〓그럼 자동차도 대신 주차시켜 주고 도난도 방 지해 주는 일을 하는 건가요?

윤〓아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은 만들지 못 했으니까 주차장을 감시하고 도둑을 방지하는 정 도의 역할을 하도록 하죠. 그러자면 먼저 눈이나 귀 같은 감각기관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갑자기 차가 들어왔을 때 그 차의 특징을 인식할 수 있 고(bottom up) 또 아까 봤던 차가 어디에 있나 찾아서 확인할 수도 있지요(top down). 또 차와 사람을 구분하고 차 주인의 정상적인 걸음걸이와 도둑의 의심스러운 걸음걸이도 구분하는 일 같은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아, 그리 고 시드니는 암놈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요?

김〓갑자기 왜 암수를 나누려 하죠?

윤〓시각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남자보다 여자 가 색깔에 더 민감한 경우가 있다는 거 아세요?

김〓원래 여자가 더 감성적이라서 그런가요?

윤〓더 감성적인지 아닌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 렵겠지만 사람의 경우에 색을 구분하는 방식이 성별에 따라 다른 경우가 있어요. 인간의 시각은 명암을 구분하는 시각세포인 로드(rod)와 색을 구분하는 시각세포인 콘(cone)으로 이루어져 있 어요. 콘이란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의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포인데, 나머지 색 들은 이 세 종류 콘의 반응 비중에 따라 결정돼 요.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자는 노란 빛에 잘 반응하는 콘(cone)이 하나 더 있는 경 우가 있다고 해요.

김〓여자가 색깔을 더 잘 구분한다는 건가요? 그렇 다면 시드니는 색에 민감한 여자의 눈을 갖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런데 뭐가 그리 복잡하 죠? 그냥 눈에는 카메라를 달아 주고 귀에는 이 어폰을 달아 주면 될 텐데.

윤〓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야 하고, 눈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정보와 귀로 받아들이는 청각정보를 뇌에서 다시 결합해 야 해요(binding Problem). 각 감각기관의 정보 는 따로따로 들어오거든요.

김〓후각은 좀 복잡해서 아직 만들기가 어렵다고 했죠?

윤〓어렵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또 하나의 감각기관 을 추가하는 것이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예요. 어떤 감각능력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 식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시드니에겐 일단 시각과 청각만 갖도록 해야겠어요.

김〓엄밀히 따지자면 시드니를 개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문제가 되겠군요. 사람의 감각기관으로 인 식하는 세상과 개의 감각기관으로 인식하는 세상 이 같다고 할 수 없죠. 고양이나 쥐, 개미나 바 퀴벌레가 인식하는 세상도 다를 거예요. 각 종족 은 자기 방식으로 인식되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서 살고 있는 것이죠. 어느 종족이 인식하는 세 상이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철 학에서는 인간의 감각기관에 인식되는 그대로가 세상의 본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칸트처럼 ‘현상’의 원인이 되는 ‘물자체(物 自體)’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이건 인식론에서의 오랜 논쟁거리예요. 어쩌면 나중에는 가장 섬세한 감각기관을 가지게 된 디지털 생명만이 세상을 제대로 인식한다고 주장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윤〓더 정확히 한다면 같은 종족이라도 키의 크기 에 따라, 시력의 정도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고 성격과 지능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거예요. 어 떤 몸을 가졌느냐에 따라 감각 성격 지능 등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시드니가 꼭 개일 필 요는 없을 거예요. 우리가 디지털 생명을 만드는 것은 단지 이 세상에 있는 생명을 흉내내려는 것 은 아니잖아요.

김〓그런데 그렇게 불완전한 감각에만 의존해서 판 단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요? 동양의 전통철학에서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인식은 정확하지도 않은 데다가 주관성의 영향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올바른 판단에 방해가 된다고 생 각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불교에서는 감각기관 감각대상 인식과정 등을 복잡하게 분석하기도 했 지만 결국은 그것도 감각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 인가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조선유학에서 는 인간의 정신 심리작용에 관한 치밀한 분석과 토론이 있기는 했지만 이 때도 감각은 올바른 도 덕적 판단을 위한 경계의 대상이었죠.

윤〓그래도 인간의 사고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 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나요? 감각기관의 한계나 주관성의 영향을 고려한다면 감각이 불완 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불완전함 자체가 캐릭터들의 지능이나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런 영향도 역시 생명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해요.

김〓이것을 잘 응용하면 키나 몸무게 또는 시력 등 이 성격 지능 가치관 등에 미치는 효과 등도 연 구가 가능하겠군요. 최근에는 미모가 진화와 밀 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던데 이것도 검 증해 볼 만하겠군요.

<정리〓홍호표부국장대우문화부장>hphong@donga.com

■‘bottom up’과 ‘top down’

감각정보 처리방식들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감각기관에 포착됐을 때 그 가운데 필요한 것을 찾아 인식하게 되는 것을 ‘bottom up’이라 한다. 또 특정한 의도를 갖고 그 대상을 찾아내는 것은 ‘top down’이 된다. 예컨대 길을 둘러보다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것이 택시임을 인식하는 것이 ‘bottom up’이라면, 길에서 택시를 타기 위해 둘러보며 택시를 찾아내는 것은 ‘top down’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이 모두 있어야 사물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대응이 가능하다.

■로드(rod)와 콘(cone)

인간의 시각 인식은 명암을 구분하는 시각세포인 ‘로드’와 빨강 초록 파랑 각각의 파장에 잘 반응하는 세포인 세 종류의 ‘콘’으로 이루어진다. 나머지의 다양한 명암과 빛깔은 로드와 세 가지 콘의 반응이 어떤 비중으로 중첩되는가에 따른 것이고, 이를 흑과 백이나 일곱빛깔 무지개로 이해하는 것은 빛과 색에 대한 인간의 개념적 구분에 따른 것이다.

■물자체(物自體)

칸트에 따르면 ‘현상’이 우리의 감각기관에 인식된 모습인 데 비해, ‘물자체’는 그런 현상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물자체’는 인식되지 않으므로 있다 또는 없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이는 바로 ‘진리’가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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