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물은 과학적으로 창조"…美서 '신창조론' 부상

  • 입력 2000년 5월 8일 19시 47분


프로테스탄트가 세운 나라. 세계 제일의 과학 대국. 미국에서 창조론과 진화론간이 전쟁이 한창이다. 양 진영간 싸움의 연원은 깊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최근 양상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구분된다. 창조론이 ‘과학적 변이’를 통해 재무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같은 흐름을 반영한 두 개의 회합에 관심을 쏟고 있다. 4월12∼15일 댈러스 베일러대에서 열린 ‘자연의 본성 : 과학에서 자연주의의 역할’ 토론회와 6월22∼24일 위스콘신 콘코디아대에서 열리는 ‘지적 설계 : 비판적 평가’ 토론회.

이들 모임이 주목받는 이유는 창조론을 지지하는 과학자와 반대하는 과학자들간에 뜨거운 토론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토론회에는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200여명의 쟁쟁한 과학자가 참가했다.

▽창조과학의 기원

과학자와 신학자 사이의 입씨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처럼 과학자 사회 내부로 전선이 형성돼 이론투쟁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이는 비과학적 창조론이 몇 년새 성경 대신 과학의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으로 불리는 ‘신’창조론이다.

이전의 창조론은 주로 자연과학이 밝혀낸 사실에 딴죽을 걸거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복잡한 자연현상이 뉴턴의 운동법칙이나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처럼 간단한 수식으로 정리되는 것을 ‘신의 섭리’로 해석하는 식이었다.

특히 생물학 분야 중 생명기원설은 이들의 주요 타깃이 됐다. 태초에 무질서하게 흩어진 분자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우연히 만나 유전자나 단백질 같은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고분자 물질이 됐다는 이론이다. 이에대해 창조론자들은 ‘마치 폭풍이 보잉항공사의 부속창고를 휩쓸고 지나갔더니 우연해 747 비행기가 탄생하는 것과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70,80년대까지만해도 과학자들은 이같은 비과학자의 반론을 흠집내기로 여기고 무시해왔다.

▽‘신’창조론의 등장:‘지적 설계’

1990년대 들면서 창조론은 이론적 무장을 갖추면서 새롭게 발전한다.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미국 생화학자인 마이클 비히(Michael J. Behe)가 1996년 ‘다윈의 블랙박스’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었다. ‘세포의 복잡한 생화학적 과정이 오직 자연선택에 의해서만 만들어졌다고는 볼 수 없으며, 생명은 오직 지적설계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지적 설계’란 자연의 범주를 벗어난 지적 존재, 즉 ‘신의 손길’을 뜻하는 것이다.

논쟁에 불을 당긴 것은 영국의 소장 수학자인 윌리엄 뎀스키(William A. Dembski)였다. 1998년 발표한 ‘디자인 추론’(The Design Inference)이란 논문을 통해 세포의 복잡성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비히의 주장을 수학적으로 논증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창조론 진영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됐다. 신을 배제한 ‘철학적 자연주의’(Philosophical Naturalism)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하며 근대과학의 뿌리를 흔들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지적 설계’ 이론의 정당성을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분야에서 거들고 나섰다. 기독교계와 철학계 일부에서도 ‘신’창조론을 지원했다.

▽진화론의 반격:‘간극의 신’

진화론측 과학자들도 이론적 반격의 포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주자는 ‘이기적 유전자’의 주인공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okins). 그는 ‘비히가 진화론자들이 세포 이전 단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이를 간과해왔다고 주장한 것은 이에 대한 연구성과들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탓’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신의 홈페이지(www.world-of-dawkins.com)에 비히의 서명을 패러디한 ‘비히의 엠티박스’란 코너를 만들어 수 십편의 반박 논문을 게재했다.

진화론측의 창조과학 비판은 ‘간극의 신’(God of Gaps)이란 말로 요약된다. 창조과학은 현재의 자연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적인 간극(Gap)을 메우기 위해 신을 끌어들였을 뿐이라는 것. 예로부터 과학이 미처 풀지못한 일은 ‘신의 영역’으로 간주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역사가 근거로 제시된다.

▽창조과학의 미래

현재로서는 양 진영이 대등한 위치에서 치열한 ‘인정 투쟁’을 벌인다고 보기는 힘들다. 진화론의 이론은 탄탄하게 무장된데 비해 창조과학은 이에 대적할만한 성과가 적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은 지난달 열린 컨퍼런스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창조과학측 학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지 못한 채 ‘동어반복’이 많았던 반면에 진화론 진영의 반박논리는 상대적으로 풍성했다는 평을 받았다(칼럼니스트 제임스 홀의 중도적 리뷰는 www.americanpartisan.com/cols/hall/041800.htm 참고).

이같은 분위기 때문에 창조과학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이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 신에 의탁하지 않고 진화론이 채우지 못한 ‘빈칸’을 얼마나 많이 채울 수 있을지가 향후 ‘판세’를 좌우할 관건이 될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