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온라인 계모임」『때와 장소를 안가립니다』

  • 입력 1998년 3월 10일 19시 46분


우리나라 중국집에 온돌을 깐 ‘룸’이 많은 이유는? 40대만 돼도 주저없이 대답하리라. “동창회나 계모임방으로 쓰는 거잖아.”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갓난아이, 식당 안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 개구쟁이들을 붙들어놓고 두세시간씩 수다떠는데 중국집 온돌방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그러나 지금의 30대 이하 세대는 ‘온돌방 계모임’이 옛날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컴퓨터통신이라는 ‘가상공간’이 새로운 계모임방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결혼 3년차 주부 박병희씨(28·국회사무처). 남편의 대학친구 부인들과 부부동반으로 ‘창우회’라는 계모임을 갖고 있다. ‘곗날’은 월1회가 아니라 1주일 중 아무 때나. 인터넷에 접속해 ‘창우회’ 홈페이지를 띄운 뒤 “우리집에서 어저께 글쎄…”라고 입력하면 계모임이 시작된다.

계모임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말.

“계원끼리 겨울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10커플이나 되다보니 한집이 되는 날은 다른 집이 안되고…. 전화로 스케줄 조정하느라 짜증을 내다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계모임방으로 써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홈페이지 관리자인 백준현씨(29·LG반도체연구원)의 설명.

마침 고려대 전자전산공학과 88학번 동기인 남편들이 모두 직장에서 인터넷과 함께 산다는 이점이 있었다. 부인들 중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다섯사람. 그러나 남편들이 ‘인터넷맹’ 아내들에게 게시내용을 읽어주고 ‘낭독료’를 받거나 아내의 편지를 대신 입력해주고 ‘대서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됐다.

모임방을 만들고 난 뒤의 가장 큰 수확은 ‘언제 어디서 만나느냐’로 고민하지 않게 됐다는 것.

한 커플이 ‘만납시다. 우리집 장소제공 가능. 날짜는 언제 좋음’을 게시하면 이를 조회한 다른 커플들은 ‘좋음, 안됨’이라고 답신을 띄워 모임날짜를 조정한다. 호스트가 된 부부는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을 한개씩만 올릴 것’을 띄우고 그날의 메뉴까지 확정한다. 약속한 날까지 전화한통 하지 않아도 출석률은 예전에 비해 배이상 높아졌다.

온라인계모임은 재정개선에도 일조.

“여름에 여행을 떠나기 위해 커플당 매달 3만원씩 회비를 모으고 있는데 펑크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회비 빨리 내라고 한번 게시를 했더니 ‘불량계원’명단을 띄울까봐 부랴부랴 회비를 온라인으로 보내오던걸요”.

회계 박병희씨의 설명.

계원끼리의 수다가 국경을 넘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게 된 것’도 변화다. 어느날 모임방에 떠오른 영어통신. 눈이 휘둥그레진 계원들이 확인해보니 싱가포르에 보름간 출장간 한 계원이 보낸 것. ‘Hello, Everyone…’. 몇달간 지방근무를 떠나는 계원도 ‘격조함’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됐다.

온라인계모임방을 만든 후 ‘물의’도 있었다. 남편들끼리 아내에게는 밝히기 싫은 회사생활의 고달픔 같은 것을 털어놓고자 ‘남자들만의 방’을 만들었다가 부인들이 “혹시 ‘이상한 그림’ 띄워놓고 보는 것 아니냐”며 거칠게 항의해와 결국 방을 폐쇄한 것.

온라인계모임방이 소중한 이유는 오프라인의 관계까지 더 끈끈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매일 친구부부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확인하는데다가 부부가 정보를 공유하니까 만나서 할 얘기가 더 많아지더군요. 계원 김윤씨(30)의 얘기.

‘중국집 계모임’ 세대에게는 전자정보시대가 삭막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세대는 무대를 중국집에서 통신공간으로 옮겼을 뿐 ‘인간의 얼굴을 한 계모임’의 또다른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온라인 계모임방 만들려면 ▼

PC통신에 동호회나 작은모임을 만드는 방법도 좋지만 인터넷공간에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인기가 높다. 천리안 하이텔 아이네트 등 온라인서비스업체들은 신규가입자에게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저장공간의 크기는 대개 10MB 안팎. 업체별로 홈페이지 개설을 위해 지원하는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중국집 계모임에 기본적으로 자장면값이 든다면 인터넷 계모임의 경우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의 하나. 인터넷에는 컴퓨터업체들이 자사 광고를 위해 무료 홈페이지 개설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해 놓기 때문이다.‘야후 코리아’나 ‘심마니’ 등의 검색엔진을 이용해 검색어로 ‘무료 인터넷’을 입력하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사용자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 뉴스그룹에 들어가 ‘혹시 무료홈페이지 개설이 가능한 곳을 아시면 가르쳐 주시길’이라고 SOS를 띄우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데 어떤 점이 좋고…’하는 자세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인 답신이 날아오게 마련이다. 단, 공짜 서비스의 경우 제공자측의 사정에 따라 갑자기 서비스가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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