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발전할수록 사회에서 힘을 얻는 원천이 폭력에서 돈으로, 돈에서 정보로 변한다」.
앨빈 토플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 사회의 「정보전쟁」은 지하세계 갱단의 다툼보다 더 살벌할 때가 많다.
삼성그룹은 계열사의 모든 PC에 전자사원증을 삽입하지 않으면 부팅이 안 되는 카드키 설치를 최근 시작했다. LG그룹은 회사내의 사무실마다 서로 다른 암호를 입력해 놓고 외부인의 발걸음을 통제하고 있다. 건물 내부로 일단 들어왔더라도 방문을 허가받은 부서 이외의 다른 곳은 전자 방문증으로 열 수 없도록 했다.
보안전쟁이 특히 「살벌한」 곳은 시스템통합(SI)업체.
일반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전산망을 설치해주는 게 주 업무인 삼성SDS 쌍용정보통신 LG―EDS 등 SI업체들이 취급하는 프로젝트의 가격은 적게는 수 억원에서 많게는 수 백억원. 이들은 업무의 특성상 고객사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다른 SI업체들과 차별화되는 신기술을 늘 숨겨두고 있다. 신기술 하나가 수백억원의 가치가 있는 셈.
때문에 회사 내에서도 고객사에 선보일 차별화된 신기술을 연구하는 「제안실」에 대한 보안이 특히 철저하다.
쌍용정보통신의 경우 「A제안실」에 들어가려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ID카드를 삽입한 뒤 팀원들만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특수 자물쇠를 풀어야 한다. 비밀번호도 불규칙한 주기로 계속 바꾸고 있다. 삼성SDS는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보안을 위해 프로젝트명에 암호를 사용한다. 「X프로젝트」「A프로젝트」 등의 단어를 입에 담으며 대화를 하다가는 자칫 고정간첩으로 오해받을 정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인력들은 호텔방이나 고객사의 사무실에서 합숙을 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은폐」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자리잡은 관행이다.
프로젝트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원들도 「보안」이 생활화 돼있다.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컴퓨터를 끄지 않거나 비밀번호가 설정된 화면보호기를 띄우지 않으면 부서장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받거나 심할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도 받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론 액수가 거대한 사업이 많기도 하지만 업계의 특성상 고객사들에 대한 사정도 많이 알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에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보안을 「군대 수준」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