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키드」 조성준군]「컴」조립 주문하세요

  • 입력 1997년 6월 24일 08시 10분


「용산 키드」 조성준(17·서울 은곡공고2년). 매일 오후4시가 되면 그는 교복을 벗고 용산전자상가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직 사무실도 공장도 직원도 없지만 분명 그는 「사장님」이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컴퓨터를 조립해서 파는 게 그의 일. PC통신으로 광고를 해 손님을 모은다. 생산(조립하기) 홍보(PC통신에 글 올리기) 판매 영업까지 혼자 힘으로 해치운다. 누구나 그렇지만 처음엔 조그맣게 시작했다. 지금은 큰 물건(컴퓨터)을 다루지만 처음에는 컴퓨터 그래픽카드인 VGA카드를 팔았다. 계기도 단순했다. 컴퓨터에 성능 좋은 카드를 달고 싶었지만 돈이 모자랐다. 할 수 없이 용산을 샅샅이 뒤져 제일 싼 카드를 사서 약간의 마진을 붙여 통신으로 팔았다. 그 돈으로 한 단계 높은 카드를 사고 다시 팔고…. 이런 식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 원하던 카드를 손에 넣었다. 용산에서 컴퓨터 가게를 하시는 삼촌이 그에게 선뜻 투자했다. 물건 팔고 흥정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스 째로 물건을 떼다 팔았다. 타고난 입담 덕분인지 3일만에 20개를 팔아치웠다. 손님들에게 카드를 올바로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해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들어오는 돈이 제법 쏠쏠했다. 우쭐한 기분에 젖어있다가 큰 위기를 맞았다. 붐비는 전철안에서 물건 판 돈 60만원을 소매치기 당한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삼촌 돈인데 이를 어쩌나. 밤을 꼬박 지새우며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고민끝에 삼촌에게 「E·메일」(전자우편)을 띄웠다. 다행히 삼촌이 『천천히 갚으라』고 도리어 위로해줬다. 「어떻게 돈을 모을까」 고민하던 차에 학교선생님이 PC를 조립해달라고 부탁했다. 학교에서 컴도사로 소문난 덕분이었다. 용산을 샅샅이 뒤져 가장 싸고 좋은 부품을 골라 조립해서 주었다. 몇 만원이 남았다.「이거다」 싶었다. PC통신 게시판에 「세상에서 가장 싼 조립PC를 만들어 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단 하루만에 주문이 들어왔다. 이게 지난해 11월28일의 일. 그때 12만원의 마진을 남겼다. 그래도 용산에서도 제일 싼 값이었다. 방학과 함께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 「황소가 열받은 펜티엄」이라는 상호를 붙였다. 별 생각없이 붙인 이름이 독특해서 그랬는지 게시판에서 눈길을 끌었다. 주문이 밀려 들었다. 물건값이 제일 싼 데다 팔고나서 24시간 전화 상담에 응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아 치웠다. 하루에 3대를 조립해서 판 날도 있었다. 11월28일부터 1월말까지 불과 두달 동안 30대를 팔았으니 평균 이틀에 하나씩 판 셈이다. 통장에서 수백만원씩 돈이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좋은 부품을 싼 값에 사기 위해 용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고 다녔다. 얼굴을 알려 나갔다. 용산 내부의 흐름도 점차 눈에 들어왔다. 사업과 수업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다. 학교 전산실 컴퓨터를 모조리 고쳐 놓는 통에 실기 점수는 늘 1백점을 받았다. 대학? 글쎄, 별로 생각이 없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할 참이다. 직원도 두고 사업자 등록도 해야지.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요즘도 매일 방과후엔 용산으로 출근한다. 〈홍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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