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넷]「넷 커플」,사이버공간서 데이트…결혼…

  • 입력 1997년 6월 18일 07시 54분


세대 부부나 연인들에게 컴퓨터와 통신은 「생필품」이다. 언제 어느 때고 사이버공간에서 「자기」를 만나고 직장에서 상사 몰래 하루에도 몇번씩 「온라인」데이트를 즐기는 게 이들 커플의 일상사. 그런가하면 저녁땐 집에서 PC를 서로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어느새 「혼수품 1호」로 자리잡은 컴퓨터가 신세대들의 부부관계를 비롯한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일컬어 넷커플. 『뒤늦게 신세대에 편입했다』는 李愚淙(이우종·33·나래이동통신) 김정아씨(30·여) 부부. 그들은 두 달 전만 해도 밤이 무서웠다.시티폰 사업의 핵심 멤버인 이씨는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어쩌다가 집에 일찍 와도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척이느라 부인과 자식은 뒷전. 『컴퓨터 때문에 생과부가 됐다』고 불평했던 김씨가 돌변한 것은 한 달 전 우연히 동생 ID로 PC통신을 해보면서. 「뭐 이런 기 다 있노」 싶었단다. 김씨는 벌써 PC통신으로 아들 丞基(승기·2)의 소아과 상담을 하고 부동산 주식시세 등으로 재테크 묘안까지 짜내며 뒤늦게 배운 PC통신의 짜릿함에 흠뻑 젖어있다. 『아직 컴퓨터에 많이 의존하지는 않지만 영화표 예매하고 복덕방 뛰어다닐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김씨는 말한다. 이들보다 더 젊은 세대는 『컴퓨터가 없어도 된다』는 말을 예의상으로도 안 한다. 신세대 부부 金珉政(김민정·26·SK텔레콤) 李有慶(이유경·26·대림엔지니어링)씨는 『컴퓨터가 없었다면, 글쎄 끔찍해요』(부르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14일 결혼한 김씨 커플은 PC통신으로 맺어졌다. 나우누리 「나이동아리」멤버였던 두 사람은 정기모임에서 서로 눈이 맞기 전까지 각기 전화요금을 5만∼20만원 냈지만 「손을 잡으면서」 비로소 부담이 줄었다. 이씨는 『그 사람이 애인이 있는지는 통신요금을 보면 안다』고 너스레. 애인이 없는 사람은 온라인에서조차 여기저기 방황하면서 기회를 엿보느라 통신요금이 두 배로 나온다는 게 그의 얘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근무하는 신세대 직장인들은 애인끼리 낮에도 온라인으로 자주 만난다. 상사 눈치를 보며 불편하게 전화를 들지 않아도 전자우편을 보내거나 채팅을 하면 그만. 상사들은 열심히 일하는 줄 알겠지만. PC통신 때문에 저녁시간에는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나뿐인 전화선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통신을 할 수 없기 때문. 이런 진풍경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 머드게임광인 남편 김민정씨는 집안에 근거리통신망(LAN)을 깔 계획이란다. 두 대의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통신은 물론 인터넷 검색과 머드게임도 마음놓고 즐기는게 꿈이다. 지난 4월 어린이대공원에서 야외결혼식을 올린 朴南錫(박남석·29·한국종합판매) 趙美京(조미경·26)씨도 PC통신 덕에 「반쪽」을 찾았다. 이들의 결혼식에는 한국PC통신 申東浩(신동호)사장이 직접 주례를 섰다.결혼을 앞둔 X세대 연인들에게 「컴퓨터가 없다면」이란 가정은 억지다. J씨(25·여)는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어 기분 나빴던 어느날 애인 H씨(25)로부터 파일이 하나 첨부된 전자우편을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집(zip)풀어봐」. 압축된 「집」파일을 푼 J씨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웃음을 터뜨렸다. H씨가 윈도95용 「짱구는 못말려」 테마를 보낸 것. 윈도에 뜨는 화살표 옆에서 열심히 엉덩이를 까며 춤을 추는 짱구를 보며 J씨는 깔깔 웃었다. 그녀는 지금 인터넷을 뒤지며 H씨에게 보낼 「희귀한」 선물을 고르는 중. 컴퓨터를 아직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생소하지만 신세대 부부나 연인들에게 「컴」문화는 이제 먹고 입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나성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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