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곽승준]북핵이 부를 ‘경제 핵겨울’

  • 입력 2006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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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지금 주식을 사야 됩니까? 팔아야 됩니까?” “취업문은 더 좁아집니까?”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필자가 지난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9일 오전 북한의 핵실험 감행 소식은 추석 연휴의 여독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10월을 시작하려던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출근 전의 뉴스에서는 대입시험의 커트라인 맞히기를 하듯 핵실험 날짜를 얘기했고, 그 시간까지도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에서 “당장 북한의 핵실험 징후는 없다”고 보고하는 중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뒤 많은 사람은 과거와는 달리 이것의 국가적 파장보다는 개인에게 미칠 경제적 파장에 더 현실적인 관심을 쏟았다. 핵실험 당일 인터넷 포털 증권섹션의 방문자와 페이지뷰는 한 달 전 같은 날짜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국민의 변화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국민은 지난 3년 반 동안 청년실업, 자영업 붕괴, 소비 위축, 부동산 대란 등 경제 실정(失政)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배운 시장경제에 관한 이해가 서서히 실생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민족과 평등’이라는 듣기 좋은 이념을 좇다가 호주머니 사정이 얼마나 나빠졌는가도 절감하고 있다. 남미의 사례를 들며 일부에서 생각했던, ‘경제가 나빠지면 국민이 좌파 성향으로 갈 것’이라는 발상은 교육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자본탈출… 투자감소… 소비위축…

핵실험은 북한이 먼저 그 책임을 져야겠지만, 노무현 정권의 포퓰리즘과 어우러진 외교 정치의 총체적 실패가 그 요건을 조성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국민이 내심 품고 있는 우려처럼 뒤치다꺼리는 경제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미 대한민국은 김대중 정부 이래 8조 원 정도를 북한에 제공했다. 민간기업 하나 없는 북한과의 거래관계를 ‘민간교류’로 규정하고 남북화해의 영예를 일부 정치인이 차지했지만, 국민이 받은 것은 평화가 아닌 핵무기의 위협이다. 정말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투자이자 거래를 한 셈이다.

앞으로 북한 핵에 대한 지루한 공방과 제재 논의가 계속될 것이다. 국민은 그 기간에도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코앞에 있는 핵보유국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생산과 소비 활동을 하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핵실험 이후 달라진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국민이 살아가야 할 경제의 판 자체인 것이다.

‘다른 세상’에서는 외국자본의 탈출, 외국인 직접투자의 감소, 소비 위축은 불가피하다. 북의 핵실험 전에 이미 올해만 14조 원가량의 외국자본이 우리 증시에서 빠져나갔다. 또 한국경제는 올 상반기에 9년 만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추가적인 외국자금 이탈은 경상수지 적자 기조를 고착시킬 것이다. 노 정권 이후 굳어지는 재정적자 기조와 맞물려 한국경제는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의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상승도 못해 보고 또다시 하강 국면에 접어든 실물경기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다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외국인이 이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도를 하향 조정하기 시작하면 경제상황은 북핵 태풍의 눈에 휘말리게 된다.

신용도 하향조정땐 ‘제2의 환란’

14일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해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은 ‘남의 나라에 떨어질 핵을 왜 걱정해야 되는가’ 하고 되묻는 모습이다. 국민과도, 국제사회와도 동떨어진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해야 할까. ‘북한이 내년쯤 남북정상회담에 응하고, 이때 북핵은 남한을 공격할 핵이 아니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그래서 국민의 민족주의와 반미에 다시 불을 지핀다.’ 세간의 이런 시나리오도 태연스러운 정치인들을 보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현 정권이 북핵마저 정략의 도구로 이용한다면 ‘다른 세상’의 경제에 던져진 국민은 더욱더 궁핍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 정도 사는 것만도 ‘햇볕정책’ 덕택이라고 한다면 북 핵실험의 뒤치다꺼리에 또 나서야 하는 국민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곽승준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 sjkwa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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