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街 막전막후]한나라 소리없는 西進정책

  • 입력 2005년 1월 10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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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호남 공들이기’가 조용하면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서진(西進) 정책이다.

6일에는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과 김정부(金政夫) 당 예결위원장, 공성진(孔星鎭) 제1정책조정위원장, 박계동(朴啓東) 의원이 일제히 광주로 내려갔다.

▽예산 공세=이 정책위의장은 박광태(朴光泰) 광주시장, 박준영(朴晙瑩) 전남지사를 비롯한 이 지역 주요 인사들을 만나 정기국회 때 한나라당이 호남예산 삭감 지침을 마련했다는 일부 지역 언론의 보도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면서 적극 해명했다. 지역에서 요청한 광주-완도 간 직통도로 건설을 정부가 삭제했으나 한나라당이 되살리는 등 오히려 예산 배정을 위해 뛰었다는 게 해명의 요지.

이들은 △호남고속철도 조기 완공 △광주 지역 초일류대학 육성 △여수엑스포 특별법 제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등 ‘선물 보따리’를 잔뜩 풀고 상경했다.

이들의 호남 방문은 오거돈(吳巨敦) 해양수산부 장관의 취임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부산항 집중 개발을 주창해온 오 장관의 취임으로 광양항의 발전이 불투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역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 이 의장은 이를 의식한 듯 “한나라당은 예산편성 과정에서 광양항 개발 및 목포항 건설 관련 예산 3000여억 원은 손도 대지 않고 정부 원안에 찬성했다”고 홍보했다.

▽민주당과의 연대?=호남 연고권을 점차 회복하고 있는 민주당과의 접촉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민주당 쪽과 친분이 두터운 박계동 의원은 이달 초 한화갑(韓和甲) 민주당 대표와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을 잇달아 만났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이기려면 민주당과 적어도 정책연합 정도는 맺어야 한다는 당내 일각의 주장과 맞물리면서 미묘한 정치적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다.

박 의원은 10일 “예전에 함께 정치하던 선배들을 개인적으로 만났을 뿐 당 지도부와 교감을 갖고 한 일은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한 대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은 없다’고 못을 박으면서 집권층에 서운한 얘기들을 했고, 권 고문은 더 강경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지역주의 극복 차원에서 정책이든 뭐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한 정치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차기 집권 전략=한나라당 내에는 50만표 내외로 당락이 갈리는 대선에서 호남 지역에서의 250만표 차, 호남 출신 타 지역 표까지 합하면 500만표로 추산되는 표차를 줄이지 못하면 영원히 집권이 어렵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있다.

한나라당이 수도이전의 대안으로 목포와 광양만을 포함한 남해안 벨트 집중 육성을 통해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남해안 벨트 인구가 1400만 명이나 된다”며 “국토균형발전과 차기 집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5·18 묘지를 집단 참배하고 이 지역에서 연찬회를 개최한 것도 장기적인 플랜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당시만 해도 영남권 일부 의원은 ‘호남 배려’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게 당직자들의 얘기다.

결국 “대선에서 표를 신규 창출할 수 있는 곳은 주로 호남밖에 없다. 호남 표의 95%를 상대 당에 내줘야 하는 독식 구조를 깨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전략과 고민을 줄곧 공론화해온 당내 소장파와 중도 성향 의원들의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자칫 집토끼(영남표)만 놓칠지 모른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심재철(沈在哲) 전략기획위원장은 “호남 공들이기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 당의 호남 독식 구조를 마냥 놔둘 수만은 없는 절박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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