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08…명멸(明滅)(14)

  • 입력 2003년 5월 6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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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7월13일 구니모토 신태 사망 장남 부 구니모토 우철

모 이케가미 히토에(仁惠)

동생과 둘이서 네 모퉁이에 나무못을 박은 관을 둘러메고 마당을 가로질러 방향을 바꿔 집을 마주보고 관을 세 번 올렸다 내렸다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내일동 반장 정씨가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에게는 상여를 빌려줄 수 없다고 해서 리어카에 싣고 화장터까지 밀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밀양 공설 화장터에 도착하자 빈소를 차려놓고 제사상에 흰밥 탕국 수박 참외 시루떡 부침개를 올려놓았다 부고와 함께 장티푸스로 죽었다는 헛소문이 퍼져 문상객은 한 명도 없었다 화장터 관리인조차 관에 다가가기를 꺼려 관을 소각로 안에 밀어 넣는 것도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 것도 동생과 둘이서 해야만 했다 우리는 관이 화염에 싸이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와 아내와 딸들은 서로의 손목을 꼭 잡고 흔들며 울부짖었다 아이고- 아이고 신태야 신태야! 아이고- 아이고 나와 동생만 제정신이었다 나는 소각로를 열고 재를 꺼내서 하얀 장갑을 끼고 아들의 뼈를 주워 공이로 부수고 갈아 나무상자에 담았다 그동안 동생이 화장터 북쪽에 있는 빈터에다 사신(死神)과 산신을 위한 제단을 준비해 주었다 유골함을 흰 천으로 싸서 빈터로 향하자 여자들이 울면서 따라왔다 아이고! 아이고! 반장 정씨는 화장도 부산에서 하고 뼈도 부산항에 뿌리라고 했다 제생병원 영안실에서 그 요구를 전했지만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죽던 날 아침 그 아가 안 나오는 목소리를 짜내서 말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고 귀에다 내 입을 바짝 갖다대고 약속했습니다 엄마가 업어줄 테니까 같이 집에 가자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태는 전염병으로 죽은 기 아입니다 내는 그 아하고 9개월을 같은 수저를 쓰고 그 아를 안고 잤습니다 전염병이었다 카믄 내한테도 옮겼을 거 아입니까 아내는 발인 때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아들의 죽음을 각오한 모양이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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