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75…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 (3)

  • 입력 2003년 3월 25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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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철은 영남루 돌계단을 두 단씩 뛰어올랐다. 정자에서 갓을 쓴 노인들이 호외를 휘두르며 환호하고 있어, 속도를 높여 더 위로 올라가 돌문을 지나 참배소에 걸터앉았다. 파아파아파아, 매앰 맴 찌르르르 찌르르르 매앰 맴, 파아파아파아파아, 지-지-지-. 우철은 우승이라고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모습으로 호외를 읽었다.

<9일 오후 3시(조선시간 오후 열한 시)에 올림픽 경기장을 출발한 마라톤에 우리 대망의 손기정 군은 장쾌! 30여 나라 56선수를 물리치고 당당 우승하였다.

일착 손기정(양정고보생) 2시간 29분 19초 2

삼착 남승룡(명대학생) 2시간 31분 42초>

매앰 맴 매앰 찌르르르 찌르르르, 더운 날씨와 몸 속의 뜨거움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지-지-지- 찌르르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손기정군의 우승은 즉 조선 청년의 장래를 예언한다…조선의 아들이 세계를 무대로 우승을 하였다…쾌보에 광희작약(狂喜雀躍)하는 우중(雨中)의 대관중…도처에서 폭발하는 만세 소리…우산을 쓴 관중이 방송이 끝나는 0시 이후부터 모이기 시작하여, 이제나저제나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오전 2시, 2층 창문에서 방송이 흘러나오자, 수백명의 관중은 만세를 불렀다…광화문 네거리는 서광이 비친 듯 활기가 넘치고…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

엊그제 밤, 내가 이부자리에 들었을 때쯤에 올림픽 경기장을 출발했다는 얘기다. 왜 잊고 있었을까, 아니, 신문에는 실렸을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잠이 쏟아져서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어제 골인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연습 전에 역 앞 박씨네 가게에 들러 라디오라도 들었을 텐데.

내 가슴은 환희에 떨고 있다. 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 라고 외치면서 온 밀양을 뛰어다니고 싶을 정도다. 밀양만 가지고는 이 뜨거움을 진정시킬 수 없을 테니, 삼랑진, 김해, 부산까지라도 호외를 뿌리며 뛰어다니겠다. 그러나 이 떨리는 가슴은? 환희를 밀치고 끓어오르는 이 감정은?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진실을 토해내려 몸부림치고 있다. 두근, 두근, 두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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