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41…입춘대길(2)

  • 입력 2003년 2월 12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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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섣달 그믐날에는 첫닭이 울 때까지 온 가족이 얘기하고 있어야 되는데?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들었는데, 왜 얘기하고 있으면 잡귀를 물리치는 게 되는지 그건 모르겠다. 아버지한테 물어보그라.

오늘밤은 많이많이 물어도 되겠네.

그래 많이 물으면 아버지 피곤해진다.

우근이는 잠 안 자고 깨 있을 수 있겠나?

아들은 자도 괜찮다.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 안 했나?

그래도 아침까지 깨 있기 힘들다.

간질어서 깨울거다.

봐라 봐라, 좀 더 얇게 깎아라, 다 내삐리면 뭐 먹노.

오빠는 설날에도 달리나?

글쎄, 달리지 않겠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는데.

봄 되면 오빠 색시가 온다 했제.

그래.

언니, 어떤 사람이고?

똑똑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흐음, 내년에는 언니하고 같이 수세를 하겠네. 뭐 물어볼까?

아이고, 내년 얘기하면 귀신이 웃겠다.

재미있다 아이가, 후후후후후.

무 이파리도 뜯어라.

알았습니다. 이거 신부수업이가?

무슨 소리 하는 기고?

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웃음소리가 고막을 간질어 희향은 머리를 흔들었다. 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입안이 까끌까끌하고, 눈 위뼈가 안구로 파고든다. 후후후후후, 복조리가 팔에서 떨어졌다. 두 손을 입에 대고 터져나오는 비명을 막는다. 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콧구멍을 한껏 벌리고 간신히 숨을 들이쉰다. 이명이다, 하고 생각한 순간, 멀리서 누가 신음하고 있는 듯한 소리가 목에서 새어나오고, 자기 손이 막고 있는 것이 입인지 귀인지 몰라 손을 뗐다.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희향은 몇 번이고 숨을 들이쉬어 폐를 숨으로 채웠다. 이명이 사라지고 호흡이 안정되자, 두려움 대신 슬픔이 밀려왔다. 환청이라도 좋으니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미치기라도 해서, 소원이와 내내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자 쭉 당겨진 목구멍으로 토악질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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