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24…몽달귀신(26)

  • 입력 2003년 1월 22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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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이 떠나가면 죽지만 강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나는 하루하루를, 소원이가 빠져 죽은 강을 보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강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내 슬픔도 마르지 않는다. 밤보다 검은 강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희향은 자기도 모르게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 동작에 맞춰 조금씩 몸이 흔들린다. 젖은 낙엽에 발소리가 스며든다. 입술 사이로 소리가 새어나온다. 한숨처럼 작았지만, 슬픔으로 달궈진 숨이 희향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거지? 오줌이 마려운데 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엄마도 추운 건가? 춥다. 볼이 차가워졌다. 이전 같으면, 엄마가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주었을 텐데. 아이고, 춥다, 우리 우근이 볼이 다 얼어버리겠다고 그러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엄마를 여기다 남겨두고 나 혼자만 갈 수는 없다. 엄마는 누나 생각을 하고 있다. 비에 젖어 춥지는 않을까 하고. 영일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장례식에 사람들도 많이 모여들고 맛있는 음식도 많았고, 다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잔칫집 같았는데, 누나는 그냥 땅에다 묻기만 했다. 맛있는 것도 없었고, 묻을 때도 아버지하고 엄마하고 형하고 나밖에 없었다. 엄마도 죽나? 언젠가는 죽제. 내도 죽나? 그런 거 묻지 말라고 형한테 혼났는데, 언젠가는 죽는다, 나도. 하지만 나는 땅속에 있는데 빗물이 스미는 거 싫다. 어차피 죽는 거, 맑은 날이 좋겠다.

우근이는 나뭇잎 사이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파란색 유리였다. 젖어 있어서 저고리 소매로 닦아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뭘 주운 기고?”

갑자기 엄마가 물어, 우근은 어깨를 흠칫 들었다.

“버리라. 여기 있는 건 주우면 안 된다.”

“와?”

“와고 뭐고.”

쳇, 하고 혀를 차면서 우근은 폐옥의 툇마루로 유리를 던졌다. 유리는 어둠 속 어디선가 빛을 빨아들여 반짝이면서 깨졌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모든 것이 잠시 숨을 죽인 듯한 고요함이 마당으로 내려오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 냄새가 눈에 보일 듯 짙게 풍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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