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22…몽달귀신(24)

  • 입력 2003년 1월 20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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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이 세졌다.

우산을 펼쳤다.

조상에게 비는 것을 잊고 있었다.

희향은 검정 우산 속에서 강을 건너가는 비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수면에 무수한 파문을 그리고 있다. 두서없이, 하늘도 비도 강도 같은 혼을 지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근은 팔꿈치에 생긴 상처 딱지를 갉작거리면서 우산에 절반이나 가린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태반은 벌써 던졌는데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비가 많이 와서 내가 다 젖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어떻게 된 거야. 우산을 든 엄마의 손이 떨고 있다. 부들부들. 누가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드는 것처럼. 무섭다. 엄마가 무섭다. 뒷간에도 가고 싶다. 아까부터 꾹 참고 있는데, 이제는 쌀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 굉장히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오줌 누고 싶다고 하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혹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울고 있다면 난 어떻게 하지.

“엄마, 오줌 누고 싶다.” 우근은 진자처럼 몸을 흔들면서 말했다.

희향이 우산을 들어올리고 돌아보았다. 우는 얼굴도 화가 난 얼굴도 아니어서 우근은 휴, 하고 숨을 토했다.

“거기서 해라. 이제 3년만 있으면 보통학교에 들어갈 텐데, 지가 알아서 해야제.”

희향은 아들의 머리 위에 우산을 받쳐주고, 우근은 강을 향해 8자를 그리면서 오줌을 갈겼다.

태양은 모자의 모습을 강가에 남겨둔 채 저물어버렸다. 빗줄기가 보이지 않았다.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만 들린다. 빗발은 그다지 굵어지지 않았는데, 어둠 때문에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렇게 쓸쓸한 곳에서, 혼자 외로이 땅에 묻혀서, 멍석에 둘둘 말린 채…, 비석 같은 것 세우지 말고 우산을 받쳐줄 걸 그랬다. 똑 똑 똑 똑 똑 똑, 오른손으로 우산을 들고 왼손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있으니 귀를 막을 수가 없다. 후득 후득, 온몸이 비처럼 허물어져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후드득 후드득, 희향은 우근의 손을 놓고 왼쪽 귀를 막았다. 좍 좍, 비야, 그만 그쳐라. 부탁이다, 그쳐라. 오늘밤만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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