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대토론/국가보안법 개폐]조국-임광규씨

  • 입력 2000년 6월 22일 23시 09분


《최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급류를 타고 있다.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냉전체제의 산물이자 인권침해 논란을 빚어온 국가보안법을 이번 기회에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북한에도 노동당 규약과 형법 등 우리의 국가보안법에 상응하는 법률이 존재하는 만큼 성급하게 국가보안법을 개폐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주요 쟁점사안 비교>

찬성론쟁점반대론
법제정 당시 전제했던 무장 지하세력이 없으며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시대가 됐음시대상황의 변화남북화해가 정착되지 않았으며 미군철수 등 북한의 요구에 동조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함
현행 형법으로도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제재 가능국보법 존속 필요성자유체제의 파괴행위나 국가에 대한 불충성 제재 수단이 있어야
인권 침해, 학문과 표현의 자유 위축, 민주주의 발전 제약부작용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안전은 인권보호에 앞서는 일
우리가 먼저 국보법을 개폐함으로써 북한의 변화 유도해야개폐 여부와 시기현행대로 유지해야

▼찬성/"인권 위협하는 냉전시대 유물"▼

조국
동국대 법대 교수

[약력]
△65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대
△미국 UC 버클리대 법학박사
△영국 옥스퍼드대 방문연구원
△참여연대 실행위원

남북간의 화해 무드가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 남측 내부에 온존하고 있는 냉전의 잔재를 일소하는 작업, 특히 대표적인 냉전의 법률적 유물인 국가보안법의 개폐 문제는 이제 논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일정 아래 현실화시켜야 할 사안이 되었다.

국내의 시민 사회단체는 물론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적 단체에서도 계속 지적했듯이 국가보안법은 법 자체를 그대로 놔둔 채 해석이나 적용을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국가보안법은 탈냉전과 통일을 지향하는 시대 조류에 역행하는 법률이다. 이 법에 따르면 북한은 통일의 한 주체도 대화나 협상의 상대방도 아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휴전선 이북 지역을 불법적으로 점령하면서 정부를 ‘참칭(僭稱)’하고 ‘국가 변란’을 꾀하는 ‘반국가 단체’이며, 김정일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아니라 ‘반국가 단체’의 ‘수괴’일 뿐이다.

그러나 1991년 다름 아닌 우리 정부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남북한 양측은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고, 이에 따라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국가로 승인되었다.

같은 해 12월 남북한 당국은 ‘남북합의서’를 채택하여 상대방 체제의 인정과 존중, 내정 문제 불간섭, 파괴 전복 행위의 중단 등을 선언하였고 이러한 정신은 이번 ‘남북공동선언문’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러한 규범적 모순과 이중성은 해결되어야 하며 그 방향은 탈냉전과 통일의 방향, 즉 국가보안법 개폐의 방향일 수밖에 없다.

둘째, 매우 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는 국가보안법은 필연적으로 인권 침해를 초래하는 법률이다. 이 법은 ‘정부 참칭’, ‘국가 변란’,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 ‘목적 수행의 협의’, ‘찬양’, ‘고무’, ‘선전’, ‘동조’ 등 정형화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가득차 있다.

이에 따라 분단 반공 체제에서 조금이라도 일탈하는 시민의 사상과 활동이 그 실제적 위험성과 관계없이 공안 당국의 해석에 따라 처벌되었던 것이 우리의 과거였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권위와 폐쇄가 아니라 민주와 개방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한다면 민주주의의 활성화, 사상의 백화제방(百花齊放)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개폐되어야 한다. 사회의 발전은 사회의 근본적 모순에 대한 비판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지 이를 처벌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비판이 왼쪽에서 오건 오른쪽에서 오건 말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하여 아직 남북간에 화해가 완결되지 않았으며 적대적 긴장이 잠복해 있음을 강조하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남북관계 및 남측 내부 상황이 1948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될 당시에 전제로 한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 ‘적화 통일’도 ‘흡수 통일’도 아닌 ‘평화 공존’이 남북이 채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되었고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와 같은 대규모적이고 조직적인 무장 지하세력은 남한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북한 노동당 강령 및 규약이 ‘남조선해방론’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북한 형법도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반혁명 범죄’ 등을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국가보안법 개폐는 ‘법률적 무장 해제’라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탈냉전의 시대에 북한 법체계나 노동당의 강령 및 규약의 내용 역시 개폐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핑계로 과거의 족쇄를 고집하기보다는 대범하게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냉전의 유산을 먼저 개폐하면서 북한의 문제 조항의 폐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보다 당당한 태도가 아닐까. 형제가 잘못된 행위를 행한다고 하여 자신도 똑같이 잘못된 행위를 하며 버티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을 개폐하여도 형법상 내란죄, 간첩죄 등의 조문이 있기에 국가 안보에 대하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일으키는 행위는 처벌할 수 있다는 것, 대만의 경우 1991년에 우리의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법률을 폐지하였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반대/"北목표 불면…헌법지키는 초소"▼

임광규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총무

[약력]
△39년 충남 공주 출생
△서울대 법대, 행정대학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 고급전문가과정 수료
△서울지검 검사
△변호사

국가보안법은 우리의 헌법 체제를 지키는 초소(哨所) 10개로 구성돼 있다. 그 중에서 2개 초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0조인데 국가 안전에 위태(危殆)를 가하는 선전 선동, 국가를 타도하려는 무장조직, 무장폭파, 국가지휘부 침투간첩 등을 신고하지 않는 불충성 방관을 국가가 막아 보겠다는 것이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당시 법무장관을 지낸 구스타프 라드부르흐가 2차대전 후에 “인간의 자유를 지켜 주는 자유체제에 대한 공격자인 나치스의 자유까지도 너무 방임한 것은 바이마르공화국의 죄”라고 실토한 바 있다.

이 교훈을 잊지 않은 독일은 개정 헌법 제18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해치려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신문에 발표하거나, 교수로서 강의하거나, 집회 결사를 하거나, 통신을 하거나,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 등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우리는 6·25전쟁의 참상을 겪고도 독일 헌법 제18조와 같은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선동, 동조, 허위 사실 유포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대한민국의 자유체제에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따져 보자.

서해 연평도, 백령도를 잇는 북방한계선에서 전투 위기가 매우 높아지고 적군이 대한민국 공동체에 비정상적인 위협을 계속하는 경우를 가상해 보자. 해군, 해병대 장병이 몰려가는 일선에서 우리의 북방한계선은 국제법 위반이며 동포인 적군 병사에게 사격하는 것은 민족 범죄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명운과 안전을 명백히, 그리고 현존하게 해하는 것인데 이를 언론 자유라고 제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가.

‘국가의 존립, 안전, 기본 질서를 명백하고도 현존하게 해하는 발언이나 동조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제7조에서 새삼 규정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 민주제도의 역사에서도 있는 형사 제도이다.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판사와 법학자들은 흔히 “극장에서 불이 났다고 말하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불고지죄’는 국가보안법 제10조에서 정한 것인데 대한민국을 타도하려는 무장조직, 무장폭파, 군사기밀 간첩, 암살, 납치 등의 행위나 계획을 보고 들은 국민이 신고해야 할 충성 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헌법 제39조에 의해 국방의 충성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병역법 제3조 제86조 제87조 제88조에 따라 ‘신체검사를 받지 않거나’ ‘소집을 받고도 나오지 않거나’ 하는 등의 부작위에 대해 충성 의무 불이행으로 처벌받게 돼 있다. 이것은 전쟁터에서 살해당하는 위험을 무릅쓰라고 국가공동체가 충성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이튿날 밤 군지휘관들이 회의중인 군용 시설을 폭파할 임무를 띠고 잠입한 간첩의 계획을 알면서 경찰파출소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자. 다음날 밤에 이 군용 시설이 폭파되고 지휘관들이 살상됐다고 하자. 부작위로 그냥 보고만 있으면서 신고하지 않은 시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사살될 위험을 무릅쓰라는 충성의 의무와 가까운 경찰파출소에 가서 신고하거나 전화 한마디로 신고하는 수고를 하라는 충성 의무를 비교할 때 어느 것이 시민의 희생을 더 요구하는 것인가.

국가보안법은 제정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거나 탈냉전과 통일을 지향하는 시대 조류에 역행한다는 주장이 있다. ‘평화의 보장’을 거치지 않고 ‘악수 포옹’을 ‘화해의 완료형’으로 환시(幻視)하는 로맨티스트들도 있지만 북한의 일관된 정책과 보조를 같이 하는 세력이 있다.

가까이는 1949년에 북한을 장악한 권력이 남북협상의 미끼를 던지고 1950년 6월에는 애국자 조만식선생을 석방해 주겠으니 화해의 논의를 하자고 제스처를 하지 않았던가.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제약을 가하니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느 자유민주주의 체제나 자기의 자유체제의 파괴를 유도하는 선동선전이나 자기의 자유체제의 파괴 공작을 방관하는 불충성에 대한 제재의 메커니즘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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