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포청천과 복마전

  • 입력 1996년 11월 1일 20시 28분


지금 역사의 법정 아닌 현실의 법정에서 심판받고 있는 全斗煥전대통령은 재벌에게서 돈을 받지 않으면 기업활동이 위축될까봐 재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돈을 받았다고 둘러붙였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시내버스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노선조정을 해준 서울시청의 공무원들은 돈을 받지 않으면 업자들의 투서에 시달려 일을 할 수 없다는 해괴한 주장을 늘어놓는다는 보도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이 공무원 부패라면 나라의 앞날은 어둡다. 개혁과 사정이 한차례 세찬 회오리를 치고 지나가면 땅에 바짝 붙였던 고개 슬그머니 다시 들고 사냥감을 찾아나서는 부패공무원들이 시민의 종복으로 행세하는 한 개혁 사정 따위 정치적 구호는 허망한 물보라만 일으킬 뿐이다. ▼그 공무원에 그 업자 ▼ 한마디로 그런 공무원에 그런 업자들이다. 1천2백만 서울시민들을 담보로 검은 돈을 주고 받으며 시민들의 발을 제멋대로 자르고 붙이고 늘이고 줄였다. 때로는 자른 자리에 다른 사람의 발을 갖다 붙였다. 시민들은 죽건 말건 안중에 없었다. 칠순 할머니가 만원버스를 향해 힘겹게 뛰고 밤늦은 시간 보충수업에 시달리던 어린 학생들이 귀가버스를 기다리며 30분, 40분 길가에서 서성여도 서울시 공무원과 업자들은 모르쇠였다. 지난 3년동안 버스요금은 60%나 올랐다. 업자들은 적자를 내세워 운행정지니 파업이니 시민들을 위협하면서 뒷구멍으로 돈을 빼내 부동산투기를 하고 사채놀이를 했다. 뻔뻔한 사람들이다. 공무원들은 적자타령이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요금을 올리고 각종 금융지원까지 제공하면서 요금인상요인은 단 한차례도 실사하지 않았다. 이러고도 서울시가 문민시대라는 포장만으로 마귀가 사는 소굴이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착각과 사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물은 아무리 넓은 갓으로 덮어도 풍기는 냄새를 막지 못한다. 그런데도 서슬 퍼런 포청천 시장마저 그 냄새를 맡지 못했으니 눈썹 허연 산신령의 코도 기름밥 냄새에는 무감각했던 모양이다. 냄새에만 무감각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도장찍은 서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는 말이 됐으니 포청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헛돈 개혁이 원인▼ 문제의 근원은 헛돈 개혁에 있었다. 문민정부는 공직사회 개혁을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웠으나 말단 공직사회의 부정과 비리는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내밀화하고 음성화했다. 때로는 뒷거래되는 돈의 액수만 키웠다. 그것으로 사정은 끝이었다. 잡혀갔던 비리공직자는 사면 복권으로 풀려나고 얼어붙었던 골프장에 슬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육가(陸賈)는 한(漢) 고조(高祖)에게 말 등에서 천하를 얻었어도 말 등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고 진언했다. 개혁은 말 등에서 호령하듯 하는 작업이 아니다. 말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고 해야 할 작업이다. 다시 사정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한다. 일부 부패공무원 때문에 성실하고 정직한 대다수 공무원들도 추위를 타게 됐다. 이번에는 공무원 복지부동이 얼마나 척결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김 종 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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