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계주 결선 출전 불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일 12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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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프리카공화국)는 냉정하다. 타인에게 차갑다는 말이 아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 가장 주목 받는 스타 중 한 명인 그는 지난달 28일 남자 400m 1라운드에서 전체 14위로 24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진출했다. 의족 선수로서 비장애인과 겨뤄 준결선 진출을 이룬 최초의 선수가 된 것. 그는 8명이 나서는 결선 진출 가능성을 묻자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대회 개막 전에도 결선 진출은 과한 욕심이라고 했던 그였다.

피스토리우스의 냉정한 예측은 들어맞았다. 그는 400m 준결선에서 초반부터 처지더니 결국 조 최하위로 밀리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경기 후 깨끗하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했다. 그는 "나에겐 공정하게 뛰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해냈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이어졌다. 피스토리우스는 1일 남자 1600m 계주 1라운드에서 남아공의 1번 주자로 나섰다. 남아공은 2분59초21로 국가 기록을 깨뜨리며 전체 3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세계육상선수권 최초로 결선 무대에 선 장애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바람은 무산됐다. 2일 1600m 계주 결선을 앞두고 남아공은 피스토리우스 대신 400m 허들 동메달리스트 L J 반 질을 뛰게 하겠다고 밝혔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날 오전 자신이 제외된 사실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아쉬움은 숨길 수 없었는지 '남아공 대표 중에서 400m 기록이 두 번째로 좋은 피스토리우스를 제외한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글을 리트윗 하기도 했다.

피스토리우스가 제외된 건 팀 전력 상향을 위해서다. 400m 예선 이후 피스토리우스의 경기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또 그는 의족 특성상 출발이 느리다. 하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은 다른 선수들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피스토리우스가 계주에서 1번 주자로 나설 것을 권고했다. 출발이 느린 선수에게 1번 주자를 맡기는 건 팀으로선 손해다.

피스토리우스가 계주 대표에 뽑힌 것은 남아공 대표팀이 장애인인 그를 배려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있어야 팀이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결선에서 그의 질주를 못 본 팬들에게는 아쉽지만 그가 결선 계주 주자에서 제외된 것 역시 실력 때문이다.

세상은 피스토리우스가 의족 스프린터라서 주목한다. 어딜 가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장애인 선수가 아닌 그냥 선수로 봐달라"고 말한다.

피스토리우스는 스스로에게 냉정하다. 당당하게 비장애인과 경쟁하는 그는 앞으로도 실력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그의 질주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다.

대구=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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