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엔 언어자극이 약… 말문 터지고 폭력성 사라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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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2부>당신을 죽이고 살리는 말
우리 아이를 바꾸는 ‘언어치료’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태민이(가명·오른쪽)가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동발달센터에서 언어치료사가 들고 있는 표지판 카드를 보며 물음에 답하고 있다. 치료실을 둘러싼 벽장은 자연스러운 대화와 언어 자극을 유도하는 보드게임과 모형 장난감들로 가득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태민이(가명·오른쪽)가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동발달센터에서 언어치료사가 들고 있는 표지판 카드를 보며 물음에 답하고 있다. 치료실을 둘러싼 벽장은 자연스러운 대화와 언어 자극을 유도하는 보드게임과 모형 장난감들로 가득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횡단보도에는 누가 지나갈 수 있어요?” “…사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태민이(가명·12)가 치료사가 들고 흔들던 표지판을 보고 툭 내뱉었다. 교통 표지판 카드를 뺏으려 몇 분간 승강이를 벌인 끝에 대답한 것이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짧게나마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때마다 치료사는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했다. 태민이는 치료사와 나무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아 대화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20일 오후 취재팀이 방문한 서울 양천구 목동아동발달센터에선 서너 명의 아이가 각자 치료실에서 태민이처럼 언어치료를 받고 있었다. 13.2m²(약 4평)의 방은 보드게임과 퍼즐, 동화책이 가득한 벽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따금씩 치료실에서 “바바바” 하는 발음 연습 소리와 아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태민이는 아스퍼거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다. 아스퍼거 장애는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거의 없고 같은 행동이나 말을 반복하는 증세를 보여 대인관계가 어려운 질환이다. 어머니 홍모 씨(47)는 “아이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6년간의 언어 치료 끝에 태민이는 “주세요”라며 말로 요구하기 시작했고, 간단한 단답식 대화가 가능해졌다. 이후 더이상 친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지지 않게 됐다.

언어치료는 ‘당신의 아이를 살리는 말’이다. 한국언어장애전문가협회에 따르면 전체 인구 대비 약 5%가 언어치료 대상자에 해당한다. 이 중 대부분은 말을 최초로 배우는 시기인 영·유아기에 나타나는 발달 단계 미숙인 경우로 폭력성, 정서 불안, 자폐 증상 등 정서적 문제를 동시에 가질 확률이 높다.

김범조 삼성사과나무정신과의원 원장은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는 대부분 ‘관계 형성’에 관한 것이고 여기서 ‘언어’는 모든 치료의 매개가 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언어치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영·유아 심리치료에서 말이 가지는 중요성을 영·유아 심리장애의 대표적인 양상에 따라 분석했다.

○ 마음을 두드리는 말

자폐증, 아스퍼거 장애 등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아동은 기본적인 언어 습득 단계로 되돌아가는 치료를 받게 된다. 이들에게는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질문을 듣고 대답하고 △상황에 맞는 일상적 표현을 사용하는 연습을 주로 수행한다.

미국에서 살던 승환이(가명·6)는 자폐성 행동을 보여 지난해 치료센터를 찾았다. 유아기 때부터 ‘말’을 잃어버린 승환이는 의미 없는 소리를 반복했다. 파란색 마크가 찍힌 우유팩에 집착해 ‘블루 밀크(blue milk·파란 우유)’라는 말을 하루 종일 하거나, 뭐든지 눈에 보이는 물건을 일렬로 늘어놓는 등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아이였다.

승환이는 간단히 구분하는 것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색깔과 모양이 다른 카드를 놓고 어떤 것이 같은지, 어떤 게 무슨 색깔인지 말하는 연습부터 진행했다. 그 뒤로는 그림을 보고 설명하기, 설명 듣고 카드 맞히기 등 시간을 점차 늘려가며 언어치료를 진행했다. 몇 분 간격으로 엄마가 보고 싶다며 바닥에 드러눕곤 하던 승환이는 이제는 치료사에게 문장으로 의사를 전달할 만큼 향상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조금 늦은 나이지만 승환이는 올해 국내 유치원에 입학한다.

한춘근 서울아동발달센터 대표는 “특히 자폐나 아스퍼거 증상을 보이는 아동들에게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언어 자극이 마음의 문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말의 규칙성이 행동의 규칙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입을 열어주는 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부모와의 애착 불안정, 왕따 피해로 인한 정서 불안을 가진 아동은 언어의 습득은 어느 정도 진행됐지만 정서적 문제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운 경우다. 이들에게는 주로 △정보를 집중해 읽고 정리하고 △자신의 요구를 명확히 설명하는 연습이 진행된다. 특히 복수의 참여자와 치료사가 함께 하는 그룹치료가 주로 적용된다.

대표적인 치료 기법으로 ‘의사소통 모래상자’가 있다. 이는 아동이 치료사 혹은 참여자와 함께 모래상자 안에 가상 세계를 만들고 다양한 인형들을 배치하는 놀이를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이끌어내는 기법이다. 성덕대 재활승마복지과 이정자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폭력성, 정서불안 등의 문제를 보인 9∼11세 아동 3명을 대상으로 부모가 참여한 모래상자 치료를 주 1회씩 10회 실시한 결과 아동의 부정적 정서 표현이 의미 있는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산만한 아이의 경우 언어치료가 취학 이후 학업 부진을 개선시키기도 한다. 아이가 계산 능력은 좋지만 문장으로 설명된 수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김범조 원장은 “사고력이 필요한 문제는 독해와 언어 능력이 중요하다. 언어치료로 성적이 오른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는 7800여 명의 언어치료사 자격 취득자가 있다. 김형우 한국언어장애전문가협회 총무는 “언어치료란 단순히 인지적인 발달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자신을 표현하고 보호하는 수단을 되찾아 주는 것”이라며 “앞으로 국내에서 언어치료가 갖는 의미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모진수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발달장애#폭력성#언어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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