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가 파도처럼 출렁거려… 6시간 거리를 15시간 목숨 건 하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시각장애인 첫 등정 도전 송경태씨, 네팔 지진사태 생사 넘나들어

국내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나섰던 송경태 씨(가운데)가 지난달 네팔 현지에서 ‘대지진’을 경험했다. 그는 “지진 당시 산의 출렁임이 너무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송경태 씨 제공
국내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나섰던 송경태 씨(가운데)가 지난달 네팔 현지에서 ‘대지진’을 경험했다. 그는 “지진 당시 산의 출렁임이 너무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송경태 씨 제공
“5번 죽을 고비 넘긴 에베레스트인데…. 계속되는 지진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전북 시각장애인도서관장을 맡고 있는 시각장애인 송경태 씨(54)는 두 달 전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네팔로 떠났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첫 에베레스트 등정이었다. 그는 군대에서 사고로 1급 시각장애인이 됐지만, 일반인들과 함께 꾸준히 산악회 활동을 하며 실력을 다졌다. 하지만 4월 25일(현지 시간) 네팔을 뒤흔든 지진으로 그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고 당일 오전 2시 그는 베이스캠프에서 약 9시간 반을 걸어 캠프1 지점(해발 6500m)에 도착했다. 그때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드르륵’ 하고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아,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옆에서 몸을 떨며 주문을 외던 셰르파와 한참을 부둥켜안은 채 공포에 떨었다. 처음엔 산사태인 줄 알았다가 주변에서 ‘지진(earthquake)’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등정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오게 됐다.

9시간 반 동안 올라간 거리는 내려올 때는 그 시간의 3분의 2 정도인 약 6시간이 걸리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송 씨가 베이스캠프까지 돌아오는 데 15시간이나 걸렸다. 발을 디디고 올라왔던 얼음은 무너졌고, 사다리도 끊어져 길이 사라졌기 때문.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하산하다 보니 30도 경사진 언덕에서 넘어져 10m를 굴러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로프 하나가 끊어져 추락할 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와 원정대 동료들은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자신과 부둥켜안고 주문을 외던 셰르파의 가족들은 지진으로 모두 숨졌다. 하늘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은 송 씨는 2일 네팔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생존과 죽음이 갈리는 지진 사태를 겪고 난 뒤 삶에 대한 감사함을 절실히 느꼈다”며 “계속된 지진 피해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네팔의 안전을 위해 지금도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네팔#지진#에베레스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