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자 누군지 다 알아… ‘배신자’ 낙인찍힐까 입 다물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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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문화 확 뜯어고치자]<上> 가혹행위 악순환 왜
보고도 못 본척… 신고 사각지대



국민을 경악하게 한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은 가해자로부터 사건의 내막을 전해들은 김모 상병(21)의 용기 있는 신고가 없었다면 자칫 단순 질식사로 묻혀 버릴 수도 있었다. 만약 폭행 초기부터 신고가 이뤄졌다면, 제도적인 신고 장치만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윤 일병이 목숨을 잃는 극한상황은 피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군 사고의 대부분은 신고만 제대로 이뤄지고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마음의 편지’로 알리면 예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은 명령계통을 중시하는 계급조직이다. 이 때문에 신고자가 쉽게 알려지고 지휘관들도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자 전출을 꺼리고 있다. 이젠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할 때다.

○ “비밀보장 안 되는 신고…하고 싶어도 못해”

군에서 운영하는 신고 채널은 개인이 작성하는 마음의 편지를 비롯해 군 감찰실, 국방부 헬프콜 전화 등이 있다. 이런 채널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윤 일병 사망 사건을 계기로 확인된 셈이다. 사건이 발생한 28사단에서 복무했던 예비역 병장 A 씨(23)는 “마음의 편지를 통한 소원수리는 1년에 20∼30번 한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식당 등 공개된 장소에 100명 가까이 모여서 쓰다 보니 누가 뭘 썼는지 다 알게 된다”고 말했다. 쓰라고 해도 사실상 쓸 수 없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

신고자는 보통 관심병사로 분류된다. 지휘관들이 보호 차원에서 신고자를 관심병사로 분류한 것이지만, 관심병사가 되는 순간부터 면담 등을 이유로 자주 불려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면 부대에 소문이 퍼지고, 동료를 고자질한 ‘배신자’로 낙인찍히곤 한다.

해병대에서 현역으로 복무 중인 B 병장(26)은 “가혹행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더라도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군이 워낙 폐쇄적인 조직이고 말이 빨리 퍼지기 때문에 무언가 하려는 움직임만 보여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 신고 자체가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현실

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의 ‘모범 답안’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대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부대 지휘관들이 이들을 상급부대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려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대대급 부대에서 사고가 나면 그 인원은 대대 안에서만 근무처나 보직 조정이 가능하다. 연대급 다른 부대로 옮기려면 연대장의 승인을, 사단 내 부대 조정을 하려면 사단장의 승인을 각각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지휘계통 부대 안에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는 하나마나한 조치가 되는 셈이다.

A 씨는 “GOP(일반전방소초)에서 근무할 때 한 부대원이 폭언 등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소원수리를 했는데 소대장이 이를 묵살했다”며 “이후 그 친구가 소원 수리했다는 게 선임들에게 알려져 그 친구만 더 힘들어졌고 결국 대대장한테 울면서 호소한 뒤에야 다른 부대로 갔다”고 전했다.

○ 전출 후에도 겉도는 신고자들…‘그럴 바엔 남아라’

군도 고민을 호소한다. 부대 전출 및 보직 변경을 쉽게 허용하는 것이 자칫 특혜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피해자의 상당수가 관심병사인 경우가 많아서 다른 부대도 이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운 좋게 받아주는 부대가 있더라도 새로운 부대의 생소한 환경에서 ‘아저씨(다른 부대 병사를 지칭하는 말)’ 대우를 받다가 전역한다. 선·후임 서열도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한 예비역 장교는 “아예 해군이나 공군으로 옮기더라도 군 조직의 특성상 개인 기록에 왜 옮기게 됐는지 다 적혀 있어 얘기가 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무철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조사관은 “권익위에서 2011년 9월부터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엔 내부 신고자를 고발자로 배척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며 “내부 공익신고자·공익제보자와 같은 용어 사용으로 제보자는 배신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택 neone@donga.com·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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