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따라 이란 친 트럼프…지독하게 변덕스럽지만 치밀해” [트럼피디아] 〈60〉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일 09시 20분


지난해 12월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의 사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찾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팜비치=AP 뉴시스
지난해 12월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의 사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찾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팜비치=AP 뉴시스
“지난번 이란이 공격당했을 때, 현장에 있던 내가 배운 것들.”

영국 외무장관의 전 보좌진이 지난해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전후 영국과 미국, 이스라엘 정부를 오가며 목격한 장면들을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고를 통해 공개했다. 이날 미국은 이스라엘과 이란 수도 테헤란에 대한 합동 공습을 단행했다.

벤 주다(38)는 지난해 6월 데이비드 래미 당시 외무장관을 보좌하며 미국 측과 회담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이란 측과 회담하기 위해 제네바로 날아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계 질서 속에서 ‘혈맹’ 영국조차 무기력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 D-8개월
벤 주다는 2024년 7월~2026년 1월 데이비드 래미(54)의 특별 보좌관을 지내며 주요 외교 회의에 참여했다. 현재는 사직한 상태다. 래미는 2024년 7월 키어 스타머 노동당 정부 출범과 함께 외무장관으로 입각한 뒤 지난해 9월 부총리로 보직을 옮겼다. 22세에 영국 최연소 변호사가 된 래미는 2000년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노동당의 미래로 각광받는 진보 정치인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 외무장관 회의.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벤 주다 특별 보좌관(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이 참석한 모습. 제네바=AP 뉴시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 외무장관 회의.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벤 주다 특별 보좌관(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이 참석한 모습. 제네바=AP 뉴시스
2024년 10월 이스라엘은 광범위한 레바논 작전을 통해 헤즈볼라 지도부를 궤멸했다. 주다는 당시 영국 외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중동에서의 무력 사용이 성공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두 달 뒤, 래미 외무장관은 늦은 밤 보좌진을 관저로 불러 레바논 음식을 시켜 먹으며 “2025년이 이란의 해”가 될 것 같다는 직감을 전했다고 한다.

● D-5개월: “이스라엘은 테헤란 타격을 원한다”
새해가 되자 영국 외무부 대표단은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비비(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두 번째 뇌’라 불리는 달변가 보좌관 론 더머를 만났다. 주다는 더머와의 면담을 통해 이스라엘이 테헤란의 알리 하메네이 정권을 직접 타격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영국 정부가 확신하게 됐다고 전했다. 런던으로 돌아온 래미는 외무부에 “협상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5월이 되니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여러 차례의 브리핑 끝에 래미는 주다를 따로 불러 이스라엘이 몇 주 안에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D-13일: 이스라엘, 대대적인 테헤란 공격 감행
공격은 6월 13일 이른 새벽에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란 수도 테헤란을 공습한 것. 이란은 직후 이스라엘 텔아비브 등에 보복 공격을 퍼부었다.

지난해 6월 13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건물. 테헤란=신화 뉴시스
지난해 6월 13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건물. 테헤란=신화 뉴시스
그 후 며칠 동안 래미는 유럽 국가들과 협력하며 이란을 설득하고 분쟁 확대를 막기 위해 수많은 전화를 돌렸다. 핵 농축 중단 협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탈출구를 제시하려 했다. 당시 J D 밴스 미국 부통령 역시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에 영국은 이란이 체면치레 수준의 미미한 농축분만 남기고 모두 포기한다면 미국의 공격을 피하는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념과 국경을 넘는 래미와 밴스의 전략적 우정은 트럼피디아 36화에서 살펴봤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50810/132156219/1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였다. 주다는 “트럼프가 이 갈등에 본격적인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 D-4일: 트럼프, 마가 진영 불러 ‘표심 계산’
6월 18일 영국 외무부 대표단은 워싱턴으로 향했다. 래미가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중동 특사를 만나러 간 사이, 주다는 밖에서 대기했다. 그는 백악관 곳곳에 트럼프 대통령이 걸프 지역 지도자들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전했다.

그곳에서 주다는 트럼프 1기 백악관 수석전략가 출신이며 마가 진영의 대표 스피커인 스티브 배넌과 마주쳤다. 배넌은 그에게 “방금 트럼프와 아주 훌륭한 회동을 가졌다”고 말했다. 주다는 이 순간 백악관에서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2024년 10월 석방 직후 기자회견에 나선 배넌. 뉴욕=AP 뉴시스
2024년 10월 석방 직후 기자회견에 나선 배넌. 뉴욕=AP 뉴시스
“트럼프는 이란 포르도 핵시설 공습이 공화당 내 정치 역학, 즉 본인에게 중요한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계산하기 위해 반전 민족주의 우파인 배넌과 (대외정책에 대해 배넌과 대치되는 입장을 가진) 호전적 네오콘 우파인 라디오 진행자 마크 레빈 등 우익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있었다.”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래미 장관은 영국 본부에 미국 측이 여전히 협상의 여지를 두고 있지만 시간이 촉박하다고 보고했다.

● D-3일: 비협조적인 이란, 트럼프 오독한 독·프
다음 날 영국 대표단은 유럽 측과 함께 이란과의 회담을 위해 제네바로 날아갔다. 주다는 회담장 안의 모습에 낙담했다고 회상했다.

“이란 외무장관은 비협조적이었고 겉치레만 늘어놓았다. 나를 더 절망시킨 건 다른 두 유럽 외무장관들이었다. 독일 장관은 단순히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리가 없다”고 단언하며 끝냈고, 프랑스 장관은 유럽이 주도하는 외교적 해결책을 마련할 시간이 몇 주, 아니 몇 달은 더 남았다고 믿으며 공상에 빠져 있었다.“

그는 당시 래미 장관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미국의 개입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리자 이란 측이 결국 장관과 비공개 대화에 임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미 열차는 떠난 상황이었다.

● D-1일: ‘혈맹’ 영국에도 몇시간전 통보
우리가 제네바에서 이륙할 무렵, 미국의 B-2 폭격기들은 출격 준비를 마쳤다. 26시간 후, 미국은 포르도 핵시설을 타격했다. 미국은 공격 불과 몇 시간 전에야 영국에 이를 통보했다.

지난해 6월 22일 미군의 공격 직후 이란 포르도 핵시설의 위성 사진. AP 뉴시스
지난해 6월 22일 미군의 공격 직후 이란 포르도 핵시설의 위성 사진. AP 뉴시스
공습 후 트럼프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말살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영국 외무부는 실상은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란이 핵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들은 여전히 포르도 지하 깊숙이 남아 있거나, 분산되어 있거나, 혹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는 “이란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다시 서 있게 된 이유”라고 했다.

● “지독하게 변덕스럽고 거친 트럼프의 미국”
주다는 “우리가 안보 전체를 의지해 온 초강대국 미국은 지독할 정도로 변덕스러워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미국의 외교가 무엇이든, 그것은 과거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백악관 참모들조차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의 도중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를 받기 위해 뛰쳐나갔다가, 전혀 다른 정책을 들고 돌아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는 점을 공개했다.

현재 중동 정세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란 대 이스라엘’ 구도가 핵심이라는 점도 짚었다. 그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의 실상은 이스라엘이 이란과 그 대리 세력들과 최소 6개의 전선에서 맞붙고 있는 것”이라며 “가자전쟁의 후폭풍 정도로 한정해서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선택한 것은 중동의 지역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고 나선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유럽 정부들이 여전히 국제법 등 규칙에 근거한 국제정세를 믿고 있고, 대중은 단순하고 명쾌한 답변을 원하지만 모두 현실 세계와는 어긋나는 기대를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이 미국의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 강력한 반러 정서를 유지하고, 동시에 국제법의 수호자가 될 수 있었던 오랜 공식은 이제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힘이 약하다면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침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규칙 기반 질서’가 붕괴해 그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돼 벼랑 끝에 선 우리의 현 상황이다.”

60화를 맞은 트럼피디아 시리즈가 《트럼피디아: 트럼프 알고리즘을 해부하다》라는 단행본으로 최근 출간됐습니다. 연재에 대한 의견이나 궁금한 점, 건의 사항을 asap@donga.com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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