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하는 중남미 ‘블루타이드’
대선 나흘전 트럼프 “아스푸라 지지”… 친미-친기업 앞세워 0.7%P차 신승
FT “중남미 또 하나 보수동맹 탄생”
2위 후보 패배 불인정… 혼란 우려
나스리 아스푸라
11월 30일 대선을 치른 중미 온두라스에서 전산 체계 마비로 한 달에 가까운 개표가 이어진 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보수 성향의 나스리 아스푸라 국민당 후보(67)가 24일 승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아스푸라가 당선되지 않으면 온두라스에 ‘헛돈’을 쓰지 않겠다”며 사실상 선거에 개입했다.
미국과의 협력, 친(親)기업 정책을 강조하는 아스푸라 당선인은 내년 1월 27일 취임해 4년간 집권한다. 그의 승리는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 중남미 주요국 선거에서 확인된 우파의 연속 집권, 즉 ‘블루타이드(blue tide·푸른 물결)’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온두라스는 불법 이민, 마약 밀매 단속이라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목표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며 이곳에서 또 하나의 보수 동맹이 탄생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결과 발표 직후 진보 성향의 시오마라 카스트로 대통령 측에 “아스푸라 당선인에게 신속하고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라”고 촉구했다.
● 트럼프 개입에 보수 후보 0.74%P 신승
온두라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아스푸라 후보는 40.3%를 얻어 중도 자유당의 살바도르 나스라야 후보(39.5%)를 0.74%포인트(약 2만7000표) 차로 꺾었다. 진보 성향이며 집권 자유재건당 소속인 릭시 몽카다 후보는 19.2%에 그쳤다.
건설 기업가 출신의 아스푸라 당선인은 2014∼2022년 수도 테구시갈파 시장을 지냈다. 유세 내내 청바지를 입고 서민 이미지를 강조했다.
온두라스는 올 10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3640달러(약 527만8000원)에 불과한 빈국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가 지난해 세계은행 기준 0.457로 세계 최상위권이다. 지니 계수는 0∼1 사이를 나타내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개표 지연 등도 이런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지난해 온두라스에 각종 원조, 지원 명목으로 1억9300만 달러(약 2800억 원)를 썼다. 또 미국에서 일하는 온두라스인의 송금은 온두라스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나흘 전인 지난달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아스푸라 지지’를 선언하자 당초 박빙이던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특히 미국에 간 친인척의 송금에 의지하는 유권자들은 아스푸라 후보 지지로 선회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논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 발표가 늦어지는 과정에서 “나의 지지를 받는 아스푸라를 향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폈다. 나스라야 후보, 몽카다 후보 측은 “오히려 미국이 개표 과정에 개입했다”고 맞섰다.
각종 음모론이 횡행하는 데다 아스푸라 당선인이 박빙 승부로 이기는 바람에 상당 기간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스라야 후보와 몽카다 후보 측은 모두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의 일부 지지층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자 등을 불태우며 항의하고 있다.
● 대만과의 수교 복원에 관심
아스푸라 당선인이 취임하면 외교 정책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온두라스는 1941년 대만과 수교했다. 카스트로 대통령은 2023년 3월 중국과 수교하며 82년 만에 대만과 단교했다.
아스푸라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끊고 미국 및 대만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또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광업, 에너지 부문의 대대적인 개혁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후 중남미 전역의 우파 정치인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친미 국가를 늘리려 하고 있다. 올 10월 아르헨티나 중간선거 당시 ‘아르헨티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속한 강경우파 성격의 집권 자유전진당이 좌파 연합에 패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는 200억 달러(약 29조 원) 통화 스와프 체결, 200억 달러의 별도 금융 지원 등을 약속하며 밀레이 대통령을 도왔다.
각각 10월 19일, 이달 14일 대선을 치른 볼리비아와 칠레에서도 모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외친 로드리고 파스 대통령,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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