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업체 TSMC가 3일(현지시간) 발표한 미국 내 반도체 제조공장으로의 1000억 달러(약 145조9000억 원) 투자 계획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엄청난 일”이라며 치켜세웠다. 그간 대만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오던 모습에서 180도 달라진 태도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전략이 다시 한번 부각되면서 미국발(發) 관세전쟁을 향한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지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사업인 ‘알래스카 가스 개발’ 사업 참여에 관심을 표명하는 등 세부 대응 방안 마련을 본격화하고 있다.
TSMC는 3일(현지시간) 미국 내 반도체 제조공장에 향후 4년간 1000억달러를 투자하고 향후 몇 년간 반도체 공장 5곳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TSMC는 향후 짧은 기간에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최소 1000억 달러를 새로 투자할 것”이라며 “이는 수천 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고 미국 및 TSMC에 엄청난 일”이라고 환영했다. 이어 “만약 (반도체를) 대만에서 만들고 미국으로 보낸다면 25%나 30%, 50% 등 어떤 수치가 됐든지 간에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은 게임에서 훨씬 앞서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대만을 향해 보여준 태도와는 완전히 달라진 발언이다. 그는 대선 기간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반도체 보조금은 너무 나쁘다”,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쳤다”는 등 공개적인 비난을 지속해왔다.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지 않더라도, 외국산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유도할 수 있다는 취지다.
TSMC가 미국 내 막대한 투자 계획을 밝히자마자 이에 화답하듯 트럼프 대통령의 대만을 향한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미국발 관세전쟁을 향한 세계 각국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발빠른 국가는 일본이 꼽힌다.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미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2023년 기준 8000억 달러 수준인 일본의 대미 직접 투자액을 1조 달러까지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큰 알래스카 석유·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한 합작 의향도 내비쳤다.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상 역시 이달 중 미국을 방문해 철강·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 정부도 미국발 관세전쟁의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이 미국과의 합작 의향을 밝힌 알래스카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한·미·일 공동 개발 형태로 참여하는 방안에 관심을 표명한 상태다.
4일 세종 관가에 따르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6∼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장관 등 미국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한미일 3국 협력 방식의 알래스카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 추진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말 그대로 관심 정도의 수준”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가스의 대대적 증산으로 자국의 에너지 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개발 제한을 푸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알래스카 자원 개발에 힘을 불어 넣는 상황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초기 추산으로만 약 450억달러(약 64조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2~3위 국가인 일본과 한국이 개발 단계부터 사업에 참여할 것을 기대 중이다.
미국이 주요 무역 적자국을 대상으로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황에서 한국은 대미(對美) 무역 흑자를 줄이는 방안으로 미국산 LNG 등 에너지 수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알래스카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투자에 참여해 장기 구매 물량을 확보하는 것 역시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동시에 에너지 수입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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