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시도 부른 극단정치… 21년만의 국가 지도자 테러에 유럽 충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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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총리 피격… 목숨은 건져
악수하는 척하다 ‘탕탕’ 70대男 체포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테러 잇달아

15일 슬로바키아 수도 외곽 한들로바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다가 총에 맞고 쓰러진 로베르트 피초 총리를 경호원들이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출처 러시아매체 프라우다
15일 슬로바키아 수도 외곽 한들로바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다가 총에 맞고 쓰러진 로베르트 피초 총리를 경호원들이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출처 러시아매체 프라우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60)가 15일 백주대낮에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유럽 전역이 충격에 휩싸였다. 2003년 암살당한 조란 진지치 세르비아 총리 이후 유럽에서 21년 만에 국가지도자를 대상으로 벌어진 테러다.

피초 총리는 이날 오후 2시 30분경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약 150km 떨어진 한들로바 마을에서 각료 회의를 주재한 뒤 건물 밖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다 피습을 당했다. 현지 매체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한 남성이 총리와 악수하려는 듯 손을 내밀다가 갑자기 총을 다섯 발이나 쏘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복부에 총을 맞은 피초 총리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5시간 동안 응급수술을 받았다. 로베르트 칼리냐크 국방장관은 16일 피초 총리가 “안정적이지만 심각한 상태”라며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슬로바키아 국적의 71세 남성으로 알려졌다. 사진 출처 X(옛 트위터)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슬로바키아 국적의 71세 남성으로 알려졌다. 사진 출처 X(옛 트위터)
현지 매체 악투알리티에 따르면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슬로바키아 국적의 71세 남성이다. 마투시 슈타이 에슈토크 내무장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암살 시도는 정치적 동기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AFP통신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선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8년 전 “세계는 폭력과 무기로 가득 차 있다”면서 “사람들이 미쳐 가는 것 같다”며 유럽 극단주의를 비판하는 영상이 퍼지고 있다.

피초 총리가 지난해 10월 3번째 임기를 시작한 슬로바키아는 극심한 정치 분열을 겪고 있다. 앞서 2006∼2010년과 2012∼2018년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던 그는 정부 부패를 폭로한 언론인이 살해된 뒤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2018년 7월 사임했다. 5년 만에 복귀한 피초 총리는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등 친러시아적인 외교 노선에 성소수자 반대 등 극우적 정책을 펼쳐 찬반 세력이 첨예하게 맞서 왔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암살이 시도된 당일은 정부의 공영방송사 RTVS 폐지안이 의회에서 논의된 첫날이었다.

다음 달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유럽은 최근 정치인을 향한 폭력이 잇따르며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달 말 지방선거도 치르는 독일에선 최근 4건의 테러로 정치인 5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에서 양극화된 정치가 폭력으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피초 총리와 갈등을 빚어 온 지도자들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어떤 국가와 영역에서도 폭력이 일상화돼서는 안 된다”며 “국가지도자를 향한 폭력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공동선인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슬로바키아#총리 피격#유럽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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