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계속될 수 있을까[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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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42)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빈민촌 성공 신화의 몰락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기업 헝다(恒大, 에버그란데)그룹의 쉬자인(許家印) 회장은 중국 경제 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쉬자인은 1958년 허난성 저우커우시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돼 어머니가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에서 월 14위안(약 2500원)의 최저생계비를 받으며 겨우 생활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공부는 잘했다. 쉬자인은 우한과학기술대학의 금속학과에 3등으로 입학했다. 이후 제철소와 무역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1996년 그는 덩샤오핑이 경제특구로 지정한 선전시에 ‘헝다부동산’을 차렸다. 직전 회사에서 부동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헝다는 당시 다른 부동산 개발사들과 다르게 작은 면적과 싼 가격을 앞세웠다. 주택에 ‘클라우드 레이크 로열 가든’, ‘리버사이드 맨션’ 같은 서구식 이름을 붙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헝다는 수백 도시에서 10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았다. 연간 33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직간접적으로 창출했다. 회사의 직원 수도 10명에서 수천 명으로 늘었다.

헝다는 생수부터 전기차, 돼지 사육, 축구단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넓혔고, 쉬자인은 억만장자가 됐다. 중국 부호 순위를 조사하는 후룬바이푸에 따르면 2020년 쉬자인의 자산은 1981억 위안(약 36조 원)으로 당시 중국에서 세 번째로 돈이 많았다. 1, 2위는 알리바바의 마윈과 텐센트의 마화텅이었다.

쉬자인은 2018년 한 연설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과 헝다 그룹이 이룬 것은 당과 국가, 사회 전체가 준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에 감사함을 표했지만,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과실을 가장 열심히 맛본 사람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쉬자인은 희귀한 프랑스 와인을 맛보기 위해 파리를 여행하고, 100만 달러짜리 요트와 최고급 항공기를 사 모았다”고 전했다.

헝다와 중국 신규 주택 판매 1위를 다툰 대형 부동산 개발사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 창업자 양궈창(楊國強)의 성공 스토리도 영화 못지않다.

양궈창은 17살까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건설노동자로 현장에서 일하다가 1992년 비구이위안을 창업했다. 그는 사업 초기 명문 학교를 유치하면서 고급 아파트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고, 경쟁이 덜한 3선, 4선 도시를 공략하며 사업을 키웠다. 비구이위안은 2015년 1000억 위안(약 18조 1700억 원), 2017년 2000억 위안(약 36조3000억 원)의 연 매출을 거두며 업계 1위에 올랐다.

▶비구이위안의 성공 전략과 비즈니스 취약점에 관한 내용은 ‘딥다이브’ 기사 참고.
“밤 새워 설계하라”던 우주 1위 부동산 회사의 위기[딥다이브]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819/120763211/1

중국 장시성 난창시의 한 미완공 아파트 옥상에서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공사를 재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파트 벽에 걸린 시위 현수막에는 ‘신용 상실’, ‘약속 미이행’ 등이 적혀 있다. (NYT)


● 중국판 리먼 사태 우려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던 회사들이 최근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문 닫을 처지에 놓였다.

비구이위안은 지난달 6일 만기가 된 채권 이자 2250만 달러(약 300억 원)를 제때 갚지 못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현재 비구이위안은 이자와 공사자금 확보를 위해 긴급하게 자산을 처분하고 있다.

2021년 디폴트 상태에 빠진 헝다는 지난달 28일 17개월 만에 홍콩증권거래소에서 거래를 재개했지만, 주가가 80% 이상 폭락했다. 헝다는 지난해 상반기 664억 위안(약 12조 원), 올해 상반기 330억 위안(약 6조 원)의 순손실을 냈다. 부채 구조조정 중인 헝다는 최근 해외 발행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대형 부동산 개발사들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확산하면서 ‘리먼 모멘트’ 직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중국 최대 민영 자산관리그룹인 중즈계(中植系) 산하의 중룽(中融)신탁은 최근 만기가 된 신탁 상품의 상환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 부동산 업계의 돈줄 역할을 하던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못 돌려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신탁사는 은행처럼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고 구조도 복잡해 ‘그림자 금융’으로 꼽힌다. 위험의 크기와 여파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중국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판 리먼 사태’로 확산될지는 차치하더라도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문제는 파급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전문 리서치 업체 게이브칼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의 미지급 대금은 3900억 달러(약 518조 원)에 달한다. 수많은 건설 노동자, 원자재 공급 업체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떼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올해 말까지 입주하기로 하고 비구이위안에 돈을 지급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상반기 비구이위안의 주택 공급량으로 추정해보면, 최소 14만4000명이 올겨울 추위에 떨 수 있다”고 지난달 전했다.

중국 광동성 포산시 비구이위안 본사 건물. (비구이위안 홈페이지)
중국 광동성 포산시 비구이위안 본사 건물. (비구이위안 홈페이지)


● 중국인들의 부동산 ‘영끌’ 투자
중국 부동산 업계에서 6년 연속 매출 1위(2017~2022년)를 기록한 비구이위안의 채무불이행 선언이 도화선은 됐지만, 사실, 중국 부동산 업계는 이전부터 흔들렸다. 비구이위안과 자웅을 겨루던 헝다는 2021년부터 이미 디폴트 상태였다. 중국 부동산 시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문을 연 1978년 이후 중국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후 중국의 1인당 소득은 25배 증가했다. 8억 명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중국이 이처럼 성장한 배경에는 인프라, 부동산 건설(투자)의 역할이 컸다. 2008~2021년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4%가량을 매년 인프라와 부동산에 투자해왔다. 전 세계 평균(25%)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시작된 부동산 민영화가 중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당시, 부동산 기업들은 지방정부에 토지 사용권을 판매하라고 제안했고 지방정부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부동산 개발을 본격화했다. 지방정부는 이를 통해 지역을 도시화하고 곳간도 채웠다. 헝다, 비구이위안 같은 개발사들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주택과 빌딩을 지었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25년 넘게 꾸준히 상승했다. 매년 중국 부자 순위 상위권을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점령했다. 너도나도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었다.

자산의 가격 상승은 중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소비가 늘고,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중국 경기에 온기가 돌았다. (물론, 수출 등으로 경제 기초체력이 좋아진 것도 있다) 경기가 좋으니 무주택자는 열심히 일해 집을 살 수 있었고, 유주택자는 부동산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고 집을 더 구매했다. 부동산은 중국 지방정부와 가계의 부(富)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6년 초, 순탄했던 경제가 미·중 갈등과 자국 내 태양광 기업 부실 사태 논란으로 휘청했다. 연일 상해종합지수가 폭락했다.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경기 부양책을 내놨는데 이 중 하나가 주택담보대출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다. 아파트 구매에 필요한 최소 계약금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영끌 투자’가 시작됐다.

중국인들이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부동산에 돈을 넣은 것도 있다. NYT는 “중국 가계는 투자의 선택권이 (정부 규제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새 주택이나 공장에 돈을 넣는 것 외에는 거의 대안이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도 중국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은 70% 수준이다.

중국의 한 부동산 분양사무소 모습. (바이두)
중국의 한 부동산 분양사무소 모습. (바이두)


● 무너지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2016~2020년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40% 이상 급등했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한 투자(부채)와 집값 상승의 기대감(수요)이 빙글빙글 돌면서 거품을 일으켰다. 미 블룸버그는 “(정점이었던) 2019년 중국의 부동산 가치는 약 52조 달러(약 6경 8770조 원)로 미 부동산 시장 규모의 2배에 이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결국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칼을 꺼내 들었다. “주택은 거주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시 주석은 2020년, 부동산 대출 잔액 기준 마련, 개발사들의 부채 축소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시 주석이 부동산 규제에 드라이브를 건 배경에는 중국 연간 경제 생산(GDP)의 282%(미국은 257%)에 달하는 중국 내 부채 문제도 있었지만, 경제 정책 노선 변화가 더 컸다.

중국 정부는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인프라 투자, 수출 등 국가 주도 경제에서 내수 기반의 경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집값 상승으로 발생한 빈부 격차도 줄이고자 했다. 중국 언론에서 시 주석의 ‘공동부유(共同富裕·같이 잘살자)’ 문구가 자주 등장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부동산 업체들은 정부 규제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곧이어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직격탄을 날렸다. 코로나19 사태로 도시가 봉쇄되면서 주택 건설과 구매 수요가 위축된 것이다. 실제로, 팬데믹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건설이 지연됐고, 주택 판매도 반토막 이상 떨어졌다.

팬데믹 봉쇄가 풀린 뒤에도 집값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중국 부동산 중개인 등 민간 데이터 제공업체들은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와 중국의 2, 3선 도시의 절반 이상에서 기존 주택 가격이 고점보다 최소 15%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항저우시의 알리바바 본사 근처 주택 가격은 2021년 말보다 25%나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내려가면서 과잉 공급 속에 감춰져 있던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시난(西南)재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중국 도시 아파트의 약 20%인 1억3000만 채가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였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크게 오르기 시작한 2016년부터 실수요가 꺾였다는 주장도 있다. NYT는 지난달 “2016년 이후 중국의 연간 출생과 혼인 건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면서 새 아파트 구매 수요는 점차 약화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완만해진 것과 팬데믹 시기에 중국 정부가 미국과 다르게 가계에 직접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부동산 가격 급락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NYT는 “돈을 빌려 아파트를 짓는 비즈니스 모델은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만 작동한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8일 미 블룸버그가 중국의 부동산 위기를 특집으로 다뤘다. 블룸버그는 “부동산 거품을 줄이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시도가 오히려 중국 경제를 침몰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 “중국의 40년 호황 끝났다”
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최근 3년간 50개 이상의 중국 부동산 개발사가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사업을 포기한 부동산 개발사들을 상대로 입주 예정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전역의 100곳이 넘는 도시에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상환을 거부하자는 운동까지 일어났다.

당시 NYT는 “‘모기지 반란’이 100여 개 도시로 확산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부동산은 수십 년간 안전한 투자로 여겨졌지만 이제 부동산은 중산층의 부의 기반이 아니라 불만과 분노의 원천이 됐다”고 평가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 경제가 부동산 침체로 40년 호황을 끝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연 6~7%의 GDP 성장률을 기록해왔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향후 중국의 연간 성장률이 4% 미만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WSJ은 “중국을 빈곤에서 벗어나 대국으로 이끈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건설 위주 성장 모델이 더는 지속되기 힘들다”며 “저출산과 미국과의 갈등으로 ‘중진국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미국도 영원히 추월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제지표도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의 7월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5% 급락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3월 이후 최저 증감률이다.

야셍 후앙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과 수입은 총 경제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의 수입품 중 상당수는 수출이 예정된 제품의 부품이다. 후앙 교수는 올해 5월 한 행사에서 “중국은 수출이 감소하면 수입도 감소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며 “이는 일자리와 소득도 줄인다. 불행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실업률은 이미 사상 최고 수준이다. 올해 들어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6개월 연속 증가해 6월 21.3%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사상 최악의 기록이 나오자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실업률은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국가통계국은 “수치 수집이 더 개선되고 최적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베이징대의 한 경제학자는 “구직 활동을 중단한 수백만 명의 근로자를 포함하면 올봄 청년 실업률은 46.5%에 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거꾸로 가는 중국 경제
중국의 7월 소비자, 생산자 물가도 전년 동기보다 각각 0.3%, 4.4% 떨어졌다. 소비자물가가 2년여 만에 마이너스 구간에 진입했다. 생산자물가는 10개월 연속으로 하락했다. 전 세계가 중국의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말한다.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 전망되면 수요가 더 위축돼 웬만한 경기 부양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상품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해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부채가 많은 중국에서 디플레이션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WSJ은 “디플레이션은 대출 상환 비용을 증가시키고 소비와 투자를 줄이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커서 중국처럼 부채 부담이 높은 국가에는 특히 위험하다”고 전했다. 물가(제품 가격)가 떨어지면, 이전에 제품을 1개 팔아서 갚을 수 있는 돈을 2개는 팔아야 마련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존 대출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모여 물가를 더 급하게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신비월드 15화, “치솟은 주가가 지구로 돌아왔다. 파티는 끝났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참고.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20605/113793005/1

2019년 중국 남부 지역에 아파트를 구입한 리 시(33)는 지난해 펀드에 돈을 투자했다가 꽤 많이 손실을 보았지만, 남은 돈을 찾아 모기지를 갚기로 결정했다. 그는 “지금은 경제가 확실히 불안하다. 내일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WSJ에 전했다.

중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국민보다 저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GDP 대비 저축률이 다른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고 추정했다. NYT는 “중국은 사회 안전망이 빈약해 오랫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저축을 많이 하는 국가 중 하나에 속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미국처럼 소비 중심의 국가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원래도 저축을 많이 하던 중국인들이 경제가 불안해지자 최근 저축을 더 늘렸다. 올해 상반기 중국 가계의 총 은행 예금은 약 12조 위안(약 2176조 원) 증가했다.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NYT는 “저축이 늘고 투자와 소비가 줄어든 것은 사람들의 (향후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담 포센 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장은 팬데믹부터 이어진 중국의 소비 위축을 두고 ‘경제적 장기 코로나’라고 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뉴시스)


● 신뢰의 위기
중국 정부도 다방면으로 경기를 되살리려고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위안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화끈한 금리 인하도 어렵다. 외국인 투자나 자본 유출이 우려돼서다. (물론,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팬데믹 봉쇄와 미·중 갈등, 민간 기업 옥죄기 등이 얽히면서 지난해 초의 5% 수준으로 이미 쪼그라든 상태다. 또한, 중국 정부는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펀드 등의 해외 투자도 통제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환율에 영향을 덜 주면서 유동성을 늘릴 수 있는 단기 금리를 낮춰왔는데, 최근 기준금리(LPR·대출우대금리)까지 연 3.45%로 0.1%포인트 내렸다. 생각보다 경기가 쉽게 반등하지 못해서다. 블룸버그는 “경기 부양을 위해 중국 국영 은행들이 모기지 금리까지 인하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고 지난달 29일 전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지 다들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중국이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를 줄이고도 과거와 같은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려면 생산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사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분석도 많다. 시 주석 역시 ‘과학기술 자립·자강론’을 들어 반도체나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중 무역 갈등의 완화는 물론, 그간 시 주석이 ‘공동부유’를 이유로 기를 죽여 놓은 빅테크 기업의 활약이 필수적이다. (‘알리바바’가 대표적) 물론, 시 주석이 그동안 집착해 온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쉽게 내려놓지는 않을 것 같다. 향후 중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시진핑 국가주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모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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