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군 저격수들 맹활약…정체된 대반격에 숨통

  • 뉴시스
  • 입력 2023년 8월 31일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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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과 구릉이 이어지는 지형 저격수 활동 최적 여건
지뢰·드론 때문에 이동 어려워…은닉 훈련으로 극복
아군 피해 우려 근접전 때 포격 지원 대신 저격수가 역할

포격과 미사일 공격, 지뢰 등 소모전으로 일관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나지 않게 맹활약하는 전사들이 있다. 바로 총알 한 발로 적을 무력화하는 저격수들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군 저격수의 활약상을 전하는 르포기사를 실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인근 지역 최전선에서 25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우크라이나군 저격수 3명이 관목 숲에 은신했다. “악마들과 천사들”이란 별명의 이 팀은 러시아군 포병 고위 지휘관 등을 저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넓은 평야 지대가 많아 시야가 멀리 미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1차 대전 때처럼 저격수들이 맹활약을 펴고 있다. 저격수들은 사격술보다 은신술이 더 중요하다.

낚시꾼이라는 호출명의 한 팀원이 “우리는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움직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정체된 대반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있어 저격수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깔아 놓은 지뢰와 드론 때문에 저격수들이 노출되지 않고 이동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저격수들은 몇 주 동안 은닉 훈련을 거친다.

우크라이나는 또 서방국과 마찬가지로 저격수를 늘리고 있다. 보병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사격술 못지 않게 은신 능력이 중요

특수부대 저격수 출신으로 훈련을 담당하는 루슬란 슈파코비치는 “저격만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지만 특정 시점, 특정 지역에서 전황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격수들에게 은닉 능력은 필수다. 저격수들은 저격 외에도 정찰 활동도 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군을 혼란시키기 위해 저격한다.

미 육군전쟁대학 교장 출신 로버트 스케일즈 예비역 중장은 “공격을 준비하던 부대의 소대장이 저격되면 부대가 혼란에 빠진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은 서방과 달리 주임 원사나 사병 출신 장교가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장교들에 의존한다. 러시아군 장교들은 복장과 군화가 사병들과 달라서 멀리에서도 쉽게 식별된다.

소련 시대 저격수들은 종종 영웅으로 칭송됐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높은 저격 성공률을 보여 ”레이디 대스(Lady Death)“라는 칭호를 받았다. 바실리 자이체프라는 저격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바흐무트 전선은 저격수가 활동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특히 전선이 교착돼 있는 상황에서 저격수가 숨어서 총을 발사하기가 쉽다.

저격수가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차세계대전부터다. 참호전을 벌이며 대치하던 독일과 영국이 저격수를 적극 활용했다. 현재 참호를 파고 대치중인 우크라이나 전선 상황과 유사하다. 참호 밖으로 머리를 드러내는 군인은 언제든 저격 대상이다.

스케일즈 예비역 중장은 들판과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지형이 저격수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이라고 강조했다.

저격수들은 보통 2명이 한 조로 움직인다. 1명은 표적을 찾고 거리와 풍속 등을 계산한다. 두 사람이 교대로 망을 보고 휴식한다.

저격수들은 적군과 아군 사이의 무인지대로 침투해 최대 9일 까지 활동한다. 하루 또는 하루 반나절이 일반적이다. 이 기간 동안 본대와 교신을 차단하며 필요할 경우 후방의 보병 부대가 이들을 엄호한다.

저격수들은 적군이 다가오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바흐무트 지역 바그너용병그룹 파상 공세 저지 공로


저격수들은 바흐무트 지역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해냈다. 근접전을 벌이려 다가오는 러시아 바그너용병그룹의 파상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냈다. 근접전이 벌어지면 자칫 아군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포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육군이 특수부대 저격수가 2700m 거리에서 러시아군을 저격했다고 밝혔다. 역대 두 번째로 먼 기록이었다. 1등은 캐나다군 특수부대가 2017년 이라크에서 3500m에서 저격에 성공한 사례다.

악마와 천사들 저격수 부대는 115 여단 병사들 가운데 전투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로 충원된다. 저격수 훈련은 모든 보병 훈련 과정에서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저격수 훈련은 당초 1개월 반 정도 걸렸다. 미 육군 포트 배닝 기지의 저격수 학교 과정에 7주인 것을 본딴 것이다.

크름반도 원주민 출신인 피셔는 토끼, 꿩, 사슴 등을 사냥하던 사냥꾼이었다. 팀의 다른 두 저격수들은 자신들이 왜 선발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한 명은 전문 마법사였다. 호출명 턱수염이라는 병사는 ”사격술을 훈련하기는 쉽지만 침착성은 훈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인내와 은밀성이 핵심이다. 훈련장에서는 훈련병들이 관목지대에서 15m 반경 이내에 숨고 교관이 이들을 찾아내는 훈련을 한다. 드론이 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턱수염이 드론에 발각되자 분통을 터트렸다.

◆인내와 은밀성, 냉철한 성격이 핵심

저격수들은 특히 심리적 부담감이 크다. 통상의 군부대는 적을 살상하기보다는 항복하거나 물러서도록 압박하는 것이 주임무다. 많은 군인들이 며칠, 몇 주 동안 적과 마주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직접 적과 대면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저격수들은 적을 확실히 사살했다는 것을 항상 느끼며 산다. 훈련장의 저격수 3명은 적군을 사살했다고 말하면서도 몇 명을 사살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친한 동료들이 사망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적군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서 주저하지 않는다. 원래 26명으로 출발한 악마들과 천사들 부대 인원이 현재 14명만 남아 있다. 2명이 전사했고 나머지는 부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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